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 내 플레이리스트는 용도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다. 내년도 사업부 목표를 세울 때가 되면 '내년 예산안'이라는 이름의 폴더를 만들어 놓고는 슬픈 발라드를 몽땅 담았다. 마케팅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하여 내년도 예상 매출액을 제시하는데 잘 될 거라는 의지를 앞세워 숫자를 넣었다가는 부서의 일 년 농사를 말아(?) 먹을 수도 있다. 때문에 이 기간에 항상 침착하자는 의미로 분위기가 가라앉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이나 모르는 단어 투성이인 논문을 읽을 때에도 잔잔한 음악으로 구성된 플레이리스트는 엠씨스퀘어처럼 나를 오롯이 일에 몰두하게 해 주었다.
이렇게 일할 때 듣는 음악을 '노동요'라고 부르던가? 나는 노동요로 아이유 노래를 자주 들었다.
슬픈 노래, 신나는 노래, 잔잔한 노래, 중독성 있는 노래. 가릴 것 없이 아이유는 모든 장르에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서른 중반, 어느 시점부터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아이유가 빠지지 않았다.
참으로 고맙게도 아이유가 소처럼 일하며 매년 싱글 혹은 정규 앨범을 내준 덕분에 혼자 플레이리스트를 채워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의 전곡을 들으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올해 어느 날, 아이유가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코로나 전부터 열심히 전국 투어를 하던 콘서트 장인이었고 몇 년 만에 들려온 소식에 처음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예매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대학교 때 수강 신청하던 거랑 비슷하네 뭐. 그때도 인기 높은 강의를 당당하게 수강 신청했던 소싯적이 떠올랐다. 빛바랜 옛 기억이었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스멀스멀 주었다.
드디어 디데이! 시간을 확인하고 노트북을 켰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앗싸라비야 콜롬비야!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첫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잠실 주경기장 수용인원이 약 5만 명이라고 들었는데 아주 좋은 좌석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자리는 찾을 수 있을 거다. 첫 시도에 바로 성공이라니. 이십 년 전 실력이 녹슬지 않았군.
순서는 더디게 줄었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에 갔던 콘서트가 떠올랐다. 언제였더라. H.O.T. 콘서트가 있었다. 중학교 때 친구 아빠가 표를 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환경콘서트도 있었지. 그때 열심히 풍선을 흔들던 팬클럽 언니들이 생각난다. 그 좌석 앞을 지날 때면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었지.
흘러간 옛 시절을 기억하기가 무섭게 어느새 내 차례에 가까워져 있었다.
40초 남았어! 드디어 콘서트에 가는 건가?
대기순서가 100번째 안으로 들어오자 숫자가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동으로 화면이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어색한 메시지 하나가 떴다. 팝업창이 차단되어 있으니 원활한 접속을 위해 허용해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