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맺음> 퇴사 인터뷰를 한다면

정든 전쟁터를 떠나 신선한 지옥으로 출발합니다

by 마케터유정

한국 나이 서른아홉. 활발히 경제활동, 사회활동을 하는 나이인데요. 요즘 같이 코로나로 곡소리 나는 시대, 소위 잘 다니고 있는 회사 때려치우고 나간다는 분이 있어 화제입니다. 이직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던데요.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요? 만나서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A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Q 저희가 감사드릴 일이지요. 바쁜 일정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 아닙니다. 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Q 주변에서는 재미있는 생각과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소개를 하던데요. 실제로 뵈니 정말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돈줄 얼어붙고 꽉 막힌 시대, 정부에서는 사회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수차례 지급하고 있는 현실인데요. 어떤 계기로 퇴사를 하시게 되었나요?


A 네 맞아요. 경험해보지 못했던 변화가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들 많이도 당황했지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사실 코로나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발단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여 열심히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는데요. 그러다 보니 30대가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조금씩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서 삶을 다시 바라봐야겠다 싶었고요.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그러시군요. 궁금증을 일으키는 답변을 해주셨는데요. 어떤 과정이 있었기에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지요. 회사 생활이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이 회사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A 저는 외국계 회사에 오래 있었어요. 제가 소속된 사업부를 다른 회사에서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꽤나 빈번한 사례이고요. 어떤 분은 회사를 이직했다가 옮긴 회사가 다시 이전 회사로 인수되면서 자연스레 재입사하시게 된 경우도 있답니다.


Q 그렇군요. 그렇다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이직은 아니군요.


A 네, 그렇죠. 이직을 위해 이력서를 쓰고 헤드헌터와 연락하는 대신 저는 옮기게 될 회사 인사팀과 만나고 근로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으니까요.


Q 그럼 이번을 첫 퇴사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직장 14년 차에 말입니다. 이 기간을 짧다고는 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렇게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아시겠지만 회사를 오래 다녔다기보다는 잘 버텼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 성격에서 찾아보면 조금은 둔감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또 관심도 없었고요. 심지어는 회사에서 제가 욕을 먹는지도 잘 몰랐어요.


바빴거든요. 저의 하루하루는요. 저는 마케팅 업무를 하는데요. 벌써 10년 가까이했지만 신제품 출시 전략,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등 매번 반복되는 일을 할 때마다 한 번도 수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새로운 챌린지가 늘 있었거든요. 그런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낳아 길렀고요. 남편과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포기하며 맞추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제 깜냥으로는 이런 일들을 동시에 하는 게 수월하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죠. 그러니 어디 다른 곳에 한눈을 팔래야 팔 수가 없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렇게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회사 생활도 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싶은 저의 욕망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했고요. 그러니 응당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죠. 30대는 그런 시간들이었어요. 이 시절을 보내고 나니 직장 생활 14년이 되었던 거죠.



Q 그 시절이 지나고 나니 눈에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까?


A 네 맞아요.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하나둘씩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요. 당연한 얘기지만 제가 세상의 변화에서 많이 벗어나 있더라고요.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나는 그 변화 속에 있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눈을 조금씩 떠보니 하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Q 그런 일들을 회사 안에서 이루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회사를 다니면서 원하는 경험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네요.


A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크게 목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매년 사업계획과 함께 개인의 목표도 설정하지만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느낌이랄까요. 해야 하니까, 시키니까 하는 그런 거요. 동기부여도 주어진 틀 안에서 찾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처럼 남들 하는 대로 하면서 살았어요. 타인이 나에게 바라는 것에 맞추면서요.


Q 새로 눈에 보이게 되었다는 목표가 회사 안에서는 찾기 어려웠을지요? 외국계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자율성을 추구하고 개인을 인정하는 문화로 보여서요.


A 외국계 기업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지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것 자체회사 생활을 하면서 하기에는 본질적으로 방향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어느 자리에 가겠다거나 어떤 점수를 받겠다거나 회사 내에서 응당 목표로 정하는 것에 어느 순간부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순수하게 제 가치를 평가받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능력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그런데 회사 안에 있으면 좋든 싫든 소위 회사의 '네임밸류와 시스템'이라는 ‘버프*’를 받게 되잖아요. 또한 저는 업무 중 일부 특화된 분야만 맡는 것보다 전반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조직에서의 평가가 아닌 시장에서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어요
제 업무능력, 제 가치에 대한 평가 말이에요.

예전에 어떤 강의에서 들은 얘기인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돈이 없거나 가난하다면 그것은 내가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사실 속이 좀 많이 쓰렸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는 지금 충분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를 시장에 내놓아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가짐으로 내 가치를 한번 확인해보자 하는 마음이요.


Q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A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들이 꽤 있었지만 계기로 삼을 정도로 특별했던 일은 떠오르지 않네요. 다만 저는 생각이 날 때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는대요. 한 줄이라도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두곤 해요. 그리고 나중에 곱씹어 보곤 합니다.

그렇게 누적된 생각과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일정한 방향을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Q 요약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지만 생각과 경험을 조금씩 쌓다 보니 목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A 이 모든 걸 회사 생활을 한참 하고 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보인다고 해야 할지... 적절한 표현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된장인지 뭐인지 먹어봐야 아는가? 하는 물음에 저는 결국 먹어봐야 알아요 하고 답했던 거죠. 상상력의 부재인지, 행동이 앞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이걸 이해하는데 저는 14년이 걸렸습니다.


Q 향후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요?


A 저는 마케팅을 업으로 삼아왔습니다. 저라는 브랜드가 시장에서 가치가 있는지 피드백을 받는 일을 먼저 하게 될 것 같아요. 또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도 해보고 싶고요.


Q 가볍게 말씀해주셨는데 그 내용은 그렇지 않아 보이는 걸요?


A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이 가장 큰 모토입니다. 그런 경험들 한 번씩 있으실 것 같아요. 재밌는 일은 날을 새고도 밥을 안 먹고도 하잖아요. 게임할 때, 미드 정주행 할 때, 연애할 때 등등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다음번 인터뷰가 기대되는 분이네요. 몇 개월, 몇 년 후에 어떤 소식을 우리에게 들려주실지 기다리면서 인터뷰를 정리하겠습니다.


A 살아있으면 다행일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소식 전할게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버프(buff): 일시적인 강화 효과를 주는 스킬. 게임 용어에서 파생되어 일반적으로 '지지해준다'의 의미로 사용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