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어울리고 싶은 친구 무리가 있었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있었기에 처음엔 서먹했지만 어느 순간 친하게 되었다. 더욱이 2학년으로 접어들면서 무리들이 하나같이 이과를 택했는데 독일어반이자 이과를 선택한 아이들은 적었고 덕분에 졸업할 때까지 줄곧 같은 반에서 지내게 되었다. 우리는 같이 몰려다니며 방과 후에는 학교 앞 떡볶이를 먹었고 야자시간에는 함께 공부하며 학교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붙어 지냈다.
수능을 보고 난 후에도 보드 카페에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러 다니며 여전히 어울렸다. 대학교는 각자 달랐지만 나는 친구들과 함께 보려고 연극표를 마련하거나 스키장도 예약하며 총무 역할을 맡았다. 친구들이라면 열일을 제쳐놓고 만나는 나를 가리켜 엄마는 ‘아주 퍼준다’며 때론 적당히 하라 하셨지만 나는 그저 함께 지내는 게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무리들과 점점 연락이 뜸해졌다. 우리 집은 예전 살던 곳에서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기점으로 연락이 아주 끊겼다. 대학교 졸업반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변화가 많은 때였다. 나 역시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고 이십대 후반은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삼사 년 되었을 때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뜻밖에 얼굴을 만났다. 줄곧 반장을 하던 동창이었는데 나와 이름이 비슷하여 출석부 번호 앞뒤로 붙어 있었고 덕분에 짝이 되거나 조별 활동을 할 때에도 함께 하는 횟수가 잦았다. 반갑게 인사하고 내 안부를 전했다. 청첩장을 달라 하기에 얼른 이름을 써서 건네주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주말에 반창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또 다른 동창 모임에 와 있다고 말했다.
“여기 선미와 선주 다 와있어.”
예전에 어울렸던 친구 무리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간 연락 한번 없었는데 내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이렇게 통화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안부를 먼저 물었다. “다들 잘 지내니?”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잊고 있었던 우리 사이의 작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대학교 1, 2학년 때였다. 친구 무리 중에 대입을 다시 준비하는 이가 오랜만에 나오는 모임이었다. 친구를 배려하여 재수학원 인근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하면서도 다들 삼수생인 친구를 배려하여 조심히 말을 건네는 중이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풀어놓을 때면 하나같이 깔깔거리며 옛일을 추억했다. 대학교 생활 얘기가 나오면 아이들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도 쪽지시험, 조별과제에 여전히 시달린다며 고등학교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삼수 친구는 일과를 풀어놓으며 익숙해진 하루를 설명했다.
“그래.. 열심히 하니까 되겠지.”
아이들의 말에 섞여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삼수 친구는 그 말을 잡았다.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너 말조심했으면 좋겠어.”
서너 명이 모인 테이블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다른 친구도 나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졌다. 나머지는 말이 없었다.
나는 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한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서러웠다. 너희들과 보낸 고등학교 시절은 이런 거였니. 배신감보다는 그저 서러웠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싶었다.
이윽고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기분이 몹시 우울했다. 같이 가자는 친구들을 물리치고 집까지 천천히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참고 있던 감정이 풀리면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 콧물을 마구 쏟으며 엉엉 울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마음이 좀 후련해졌다. 그 무리에 끼어 어울리긴 했지만 정작 내 친구는 없구나.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오늘의 일이 있기 전에도 그전부터 종종 느껴왔던 감정이었다. 그 무리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를 자꾸만 숨겨야 하고 바꿔야 했다. 무리가 좋았지만 답답했다. 그 날의 저녁식사를 계기로 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 각자 행복하게 살자.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렇게 나는 하나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많이 달라졌을까? 내가 묻는 안부는 그에 대한 질문이었다.
“다들 잘 지내는 거야?”
오랜만에 선주, 선미와 친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답은 쉽게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언제나 먼저 다가가고 맞추는 쪽은 나였지.' 아마도 그들은 내가 주책없이 떠들고 결혼 준비 얘기를 꺼내 놓아야 슬그머니 대화를 시작할 듯 싶었다. 십 년 전 우리의 대화방식처럼. 잠깐의 침묵 끝에 나는 말했다.
“그래, 그럼 다들 잘 지내.”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 어느덧 결혼식 날이 되었다. 반장 동창은 내 결혼식에 고맙게도 와주었고 그 이후로는 동창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타인은 깨달음의 계기’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되새겨본다. 매일 붙어지내는 나 자신이지만 타인을 거울 삼아 비춰보아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해하고 진짜 내 모습이 나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