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적이라고 느껴졌다. 이래저래 시달리는 꿈을 많이 꾸었다. 옆 집에 으리으리한 부잣집이 들어서면서 우리 집 담을 무너뜨리거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상처를 입었거나 하는 식이었다.
바람 잘날 없는 생활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종종 체온계로 열을 재보면 정상 범위이긴 했지만 언제나 가벼운 미열이 있었다.
하긴 머리가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늘상이었다. 좀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고 말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이게 나의 일상이라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늘 시간에 쫓기고 해야 할 일들은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았다. 그래도 좋은 결과를 내야 하고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순간에도 나는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했다.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울고 싶었다.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힘든 걸까.
여기서 벗어나는 날이 과연 나에게 올까. 퇴근하면 울고 아침이 되면 출근하는 하루가 계속되었다.
마음 둘 곳이 참 없었다. 한 번은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고자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막상 걸어 다니다 보니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경치 좋은 카페, 맛 좋은 디저트도 그저 시큰둥했다. 갑자기 성당 생각이 났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 근처 성당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 시간의 성당은 처음이었다. 문이 열려 있을까 싶기도 했다. 택시에서 내려 성당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 문을 미는데 다행히 열렸다. 미사를 보는 성당 안은 텅 비어있었고 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나는 중간쯤 자리에 앉았다.
'하느님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저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하느님에게 한참을 하소연을 하다 고개를 숙이고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눈물이 마구 흐르면서 콧물도 흘렀다. 훌쩍거리며 기도하기를 반복했다.
너무 피곤했던지 그 와중에 졸음이 몰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여기가 어딘지 싶었다. ‘아, 잠이 들었구나.’ 어느새 눈물과 콧물은 말라있었다. 한참을 이렇게 잠이 들었던지 목이 아팠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의 찌를듯한 햇빛은 가버리고 없었다.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그날은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도 꽤 오랫동안 답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은 이어지고 일기장의 글만 나날이 쌓여갔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하루를 기록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순간을 보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얻은 답은 별 것 없었다. 포기하지 말자. 끝까지 해보자. 단순했다.
그러다가 지치면 가끔씩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영화관에 갔다. 매일 밤 잠든 아이들의 머리 냄새를 맡으며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방향이 맞으면 길은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개인은 시대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저명한 학자가 말했다. 그 말에 살을 붙여 나는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해석했다. 답을 내거나 결정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운명은 나를 다음 단계로 옮겨 주었다.
임차인과의 갈등을 시발점으로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때 길렀던 역량을 바탕으로 좋은 자리로 이직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살던 동네를 생각하면 늘 무거운 가방을 메거나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던 내가 떠오른다. 그 뒷모습이 애잔하고 쓸쓸했지만 속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불씨를 지니고 있었다. 나의 한창 삼십 대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