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말을 안 들은 대가

철없지만 제 삶 살게요.

by 마케터유정

이제와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대학 시절에 스쿠터를 타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 여대생을 대상으로 온라인게임 홍보단을 모집했는데 그 조건이 광고물이 부착된 스쿠터를 타고 통학하는 것이었다. (물론 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스쿠터를 타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고 간단한 서류 심사와 면접 후 덜컥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얼마 뒤 남산 어디에서 모여 교육을 이수한 뒤 스쿠터를 한 대씩 받았다. 200명이나 되는 여대생들이 줄지어 도심 라이딩을 하는 게 아마도 회사가 생각했던 이벤트였던 듯싶다.


간헐적인 이벤트 참가 외에는 대부분 학교에 오고 갈 때 스쿠터를 탔는데 그 기분이 참 묘했다. 앞뒤로 자동차들과 함께 운행할 땐 왠지 말썽쟁이 취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막히는 길에 삐쭉 튀어나온 쭉정이 같다고 할까. 신호 대기하며 사거리에 서 있을 땐 저 여자애 좀 봐하며 운전자들이 힐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넓은 도로를 가로지를 때 탁 틔인 해방감과 얼굴에 닿는 바람이 좋았다.


도로 위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만 시원한 행복감 젖어 한 학기 동안 꿋꿋이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당시는 학교 졸업반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지는 않으셨다.

대신 여자가 하기에 좋은 직업을 추천해 주셨다.

선생님이 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의전(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해 보라고 하셨다.


다행인지 아닌지.

졸업 전 마지막 방학 내내 열심히 기업체 면접을 보러 다녔고 가고 싶던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아 조용히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가 입사하자마자 결혼 자리를 알아보셨다.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로 맞선 자리에서 전문직 남자들을 여럿 만났다. 그리고 나와 같은 회사원과 결혼했다.



새해가 시작되고 지나온 해들을 돌이켜보니 면면히 나다운 결정을 했구나 싶었다. 덕분에 많이 울었고 당했고 그리고 살아 남았다.


꺾이지 않기를. 아무쪼록 철없이 도전하고 다시 쌓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새해에 다짐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