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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Jan 10. 2023

떼쓰면 달래지만 사주지는 않을 거야

현실판 이솝우화 '해와 바람' 이야기

새해를 며칠 앞두고 아는 언니와 만나기로 했다. 매번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었는데 염치없이 받기만 했던지라 이번엔 언니 아이들을 챙기려는 생각에 액세서리 가게에 들렀다.


점심이 지난 시각, 액세서리 가게는 오후의 나른함에서 벗어나고자 2+1 행사를 시작하던 차였다. 매장 내 2+1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고민 끝에 머리띠, 머리핀 등 몇 가지를 담아 계산대로 가져갔다. 개수를 세던 사장님이 덤으로 한 가지를 더 고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무얼 고를까 하다가 첫째가 곱창 밴드 머리끈을 종종 잃어버리기에 미리 사두어야지 싶었다. 언니에게 보낼 선물과 섞이지 않게 곱창밴드는 따로 담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뒤 머리끈 생각이 나서 주머니를 뒤졌지만 장갑을 넣고 빼다 흘렸는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어디에 떨어뜨렸구나 싶었다. 혼자만 아쉬워하다 그마저도 곧 잊어버렸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피트니스 센터를 나서려는데 선생님이 혹시 잃어버린 것 없냐며 물었다. 지난번 내가 가고 난 뒤 뭐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며 머리끈을 들어 보여주었다. 연한 핑크색 곱창밴드에 토끼 장식이 달린, 액세서리 가게에서 고른 바로 그것이었다.


감사하다며 덥석 머리끈을 받은 뒤 집에 가 서둘러 첫째를 불렀다. 둘째가 마음에 걸렸지만 최근 귀마개와 털장갑을 챙겨주었기에 괜찮으리라 여겼다. 


"은서야~ 이거 선물"


역시나 은서는 뛸뜻이 기뻐하며 곱창밴드를 손목에 끼웠다 거울에 비춰 보았다 하며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둘째 민서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이내 주르륵 떨어졌다.


"으아앙"


아차.

싶었다.


이미 늦었다. 생각이 짧았어. 민서 것도 챙겼어야 했는데. 애들 선물을 주려면 같은 걸로 2개씩 사야 한다고 항상 말했던 내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스스로를 질책하며 애끓는 마음으로 둘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그랬구나 하며 달래는데 왠지 아이는 힐끔힐끔 엄마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마치 '그래 엄마가 네 것도 사줄게'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이.


무얼 잘못했을 때 물질로 보상해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진실된 마음으로 사과하고 둘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떼쓰는 소리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한참을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계속되고 바쁜 아침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더 떼를 쓸 것아 초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물론 마음은 시꺼멓게 타고 있었다.


이 사태를 멀리서 관망하던 첫째가 마음이 영 불편했던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동생을 몇 번 보더니 “너 이거 가져. 나는 이미 곱창 밴드가 있어서. 둘을 간수하긴 어려워.” 하면서 선뜻 양보하는 것 아닌가.

이런 아름다운 장면에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눈 녹듯 흘러내리면서 '너는 어쩜 이렇게 마음씨가 곱니' 하며 첫째 것 하나 더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일련의 사태가 마무리되고 가까스로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보다가 해와 바람 이야기가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 나그네(엄마)가 겉옷을 벗었던 까닭은 바람(둘째)의 완력이 아니라 해(첫째)의 따뜻함 때문이었다는 이 신통한 얘기를 실제로 경험하니 기분이 참 오묘했다.





딴 얘기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 2+1 전략으로 추가 판매까지 만들어낸 액세서리 가게 사장님
- 분실물 찾아주고 감사인사를 받은 피트니스 선생님
- 엉엉 울어서 결국 곱창밴드를 얻어낸 둘째
- 양보를 통해 엄마에게 인정도 받고 곧 후한 보상도 받을 첫째
- 이 사달의 원인 제공자이나 첫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엄마
- 아침에 이런 사달이 난 줄도 모르고 회사에서 신나게(?) 일하고 있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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