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동안 경남 산청 시골집에 머물렀다. 이곳은 시내에서도 꽤 떨어진 곳으로 인적이 드문 편인데 10채 정도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시부모님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간간히 민박을 하며 지내시는데 대부분 시부모님 보다 훨씬 나이 드신 분들이라 아이들이 이곳에 오면 또래 친구가 없었다. 절기상 가을이라 해는 6시가 넘으면 금방 떨어졌다. 시골에 오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밖에서 놀다가 지겨우면 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고 앞마당에 나가 놀다를 반복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후, 점심 먹은 설거지를 마치고 모두가 모여있는 작은방에 가니 남편이 리모컨을 가지고 고군분투 중이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리모컨을 만졌는데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채널이 바뀐 뒤로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남편과 도련님이 번갈아 리모컨을 만지더니 이윽고는 못 고치겠다며 어머니가 부치고 있는 호박전을 먹으러 부엌으로 가버렸다.
그 리모컨을 내가 넘겨받았는데 아니 뭐 이거야 하면서 무심코 버튼 몇 개를 꾹꾹 눌렀더니 이게 웬일. 두 사람이 무색하게도 바로 텔레비전 화면이 제대로 나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기술자라며 웃으셨고 남편도 그렇게 용을 써도 자긴 안되었다며 한마디 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간단한 일인데 며느리 기운 내라 칭찬해주시나 보다 하며 별생각 없이 지나쳤다.
진짜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어제와 같이 아침상을 치우고 아이들 옷을 입혀 밖에 내보냈다. 한참을 뛰어놀더니 들어와서 만화 영화를 보겠단다. 낮이라도 시골 날씨가 조금은 쌀쌀한 터라 아이들 몸도 녹이고 쉬게 할 겸 방에서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둘째가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더니 곧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제 금방 고쳤던 기억에 대수롭지 않게 리모컨을 넘겨받아 이것저것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게 웬걸? 화면은 어제와 다르게 꼼짝도 않는 것 아닌가. 어떤 버튼을 눌러봐도 화면은 노인의 희고 긴 눈썹처럼 일렁이고만 있었다. 물론 치지 직하는 효과음도 함께.
방안을 들락거리시던 어머니는 내가 끙끙대고 있는 걸 보시곤 거의 리모컨에 붙어 있는 안내 스티커대로 한번 해보라는 말을 남기시곤 나가 버리셨다. 그렇게 반시간 정도 흘렀을까. 안내대로 리모컨을 눌러도 소용이 없자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고쳐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몇 번을 더 만지다가 차도가 없자 나는 어차피 지금은 낮이고 저녁까지는 시간이 있으나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해보기로 하고 방을 나섰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밖에서 산책이라도 할 겸 대문을 나섰다.
한참 동안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안 마당에 들어섰다. 마침 방문을 열고 나오시던 아버님이 지나가듯 한마디 하셨다. "티브이 누가 만졌나? 티브이가 다시 안 나온다. 티브이 나와야 하는데..."
그 말을 듣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텔레비전이 안 나오다니. 해가 지고 난 뒤 특별한 여가가 없는 시골에서는 더더욱 필수품이다. "아이가 실수로 눌렀네요. 죄송해요."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떻게든 고쳐야 하는데.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못 고치게 되면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고 난 뒤 어머님 아버님은 텔레비전도 못 보시고 해가 진 긴 시간을 적적하게 무얼 하며 지내실까 생각하니 더 까마득했다.
급기야 가슴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기분은 발표자료를 만들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덜 만들어진 자료를 손에 들고 미팅에 들어갈 때 느끼는 초조함인데.. 이런 긴장감을 시골에서 다시 접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큰 한숨을 쉬고 결연한 마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 리모컨을 잡았다. 엄마의 급박한 마음을 알리 없는 아이들은 "엄마, 민서가 내 것 뺏어요" 하며 주거니 받거니 방 안을 뛰어다닌다. 덕분에 복잡한 마음이 한층 더 교란되는 기분이다.
리모컨을 잡고 리셋을 안내하는 스티커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있을 뿐. 자, 다시 한번 해보자 하며 마음을 다잡고 안내에 따라 다시 한번 버튼을 눌러본다. 그리고 기다렸다. 역시 별 변화가 없다. 아니 잠깐, 외부 입력 화면에서 리모컨 버튼을 눌러도 화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걸 보니 케이블채널은 외부 입력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뭘까. 분명히 케이블과 텔레비전 본래 유선채널 중 하나가 연결되는 구조일 텐데.
그러던 중 유선 3번에서 리모컨을 작동하니 화면에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채널을 수신하고 있습니다 1/OOO'하더니 잠시 기다리자 숫자가 1에서부터 100자리까지 올라가더니 숫자가 끝나자 케이블채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하. 이게 케이블채널 개수를 얘기한 거였구나. 드디어 수수께끼가 풀렸다. 유선 3번에 두고 리모컨을 리셋했어야 하는데 케이블은 외부 입력단자와 연결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 외부 입력에 버튼만 누르고 있으니 될 턱이 있나..
결국 나는 이렇게 텔레비전을 다시 고칠 수 (?) 있었고 덤으로 예전에는 채널을 넘기다 90번대에서 끝나는 줄 았았는데 이번에 다시 케이블채널을 연결하며 100번대 채널도 더 찾아드렸다. 식구들이 모두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어머니와 아버님 남편과 도련님 모두로부터 진짜 기술자라는 찬사를 다시 한번 들었다. 과찬이시라며 싱긋 미소 짓고 묵묵히 밥을 먹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놀란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렸다.
처음에도 그렇고 두 번째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내가 뭘 알고 고친 게 아니다. 고쳐야 해서 고쳤을 뿐이다. 이런 해프닝에 거창한 능력과 흥미를 얘기하긴 어렵겠지만 텔레비전을 다시 고친 원동력을 찾아보자면 나는 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내 안의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망가뜨렸으니 내 책임이고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는 채로 서울로 오자니 긴 겨울밤을 무료하게 보내실 시부모님이 눈에 아른거렸다.
결국 어떻게든 나는 고쳐내야만 했고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고친 것이다.
한 때 방송에서 웰빙을 트렌드 삼아 DIY (Do It Yourself)에 대해 한창 떠들어댄 적이 있었다. 전문 업자나 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직접 생활공간을 보다 쾌적하게 만들고 수리하는 의미로 소개되었는데* 본디 이 말은 제2차 대전 후 영국에서 물자 부족, 인력부족의 상황 중에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 된다는 사회운동**에서 비롯되었단다.
과거 영국의 사례를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 DIY는 그저 생존의 한 형태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없으면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