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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May 27. 2022

달라진 일상에서 살아남기

육아휴직 후 복귀를 앞두고 있나요?

지금은 출산 이후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내가 첫 아이를 낳았던 십 년 전에는 회사에 한두 명 정도였다. 또한 내가 속한 마케팅팀은 제품 프로모션 행사를 기획하거나 전략을 세우거나 틈틈이 위에서 내려온 업무를 빠르게 해야 하거나 하는 등 일이 참 많았다.


첫 아이를 낳을 무렵 나는 마케팅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일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커리어 욕심도 있었고 마케팅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차마 출산휴가 이후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결국 출산 휴가에 연차 휴가만 몇 개 붙여 쓰고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에 직장으로 복귀했다.


자리를 비운 지 단 3개월에 불과했지만, 다시 돌아와 앉은 자리는 어쩐지 어색했다. 노트북을 켜고 여느 때처럼 엑셀 파일을 열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순간 늘 쓰던 엑셀 수식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것처럼 황당했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출산하면서 기력을 써버린 건지 아이가 밤에도 말똥말똥한 ‘백일의 기절’을 경험하고 나서인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던 머리가 깨끗이 비워진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하며 예전에 작업한 파일을 열어 수식을 확인하고 다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그 마저도 6시면 일을 놓고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갔다. 손주를 돌보느라 지쳤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쫓겼기 때문이다.


아이는 고맙게도 잘 자라주었지만 아직 어린지라 가끔 밤에 보채는 때도 있었다. 결혼 전,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을 잤지만 아이가 우는 데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불침번 서는 것 마냥 자다 깨다 하는 날에는 다음날 아침에 비몽사몽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집중해서 일을 하자니 몸이 고달팠다. 아이 키우는데 체력은 달리고 업무는 늘어가는데 시간은 부족했다.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노트를 펴고 업무를 나열해보았다. 중요한 일, 급한 일 등 업무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방법도 여럿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로 나누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신제품 출시 로드맵을 세우거나 제품 프로모션 캠페인을 짜거나 부서 전략을 세우거나 하는 머리가 바빠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나는 마감기간을 먼저 확인하였고 매일 해야 하는 분량을 나누었다. 꼭 계획대로 일이 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날짜에 맞추어 어느 정도 완성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로드맵을 세우거나 캠페인을 만드는 일은 보통 마케팅에서 처음 제안을 하면 영업팀장, 부서장의 검토를 거쳐 몇 차례 수정되고 덧붙여 완성되었기에 이런 방법으로 출산 후에도 다행히 중요한 업무를 빠짐없이 할 수 있었다.


한편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은 보통 반복적인 업무들이었다.

프로모션 캠페인을 시작한 뒤에 성과를 모니터링하는 업무 등은 템플릿을 만들어 전달하며 마케팅 어시스턴트 분들에게 자료를 수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영업팀에서 매번 연락 오는 자료를 찾아달라는 요청에도 별도의 온라인 공간에 자료를 정리해서 옮겨두고 부서 전체 회의 시간에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업무의 우선순위를 나누는 방법이 일상 관리였다면, 분기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이력서는 내 삶을 조금 멀리 내다보게 해 주었다. 이력서는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앞으로 뭐하고 싶은 거지?’ 하는 물음에 대한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력서를 정리하면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여기서부터 내가 목표하는 곳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고 그 대답에 따라 필요한 경험과 스킬을 얻으려 노력했다. 이 덕분에 회사의 업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실마리가 보였다.


나는 마케터로서 어떤 제품이든 출시하여 시장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때문에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는 경험이 소중했다. 운 좋게도 부서는 매년 크고 작은 신제품을 출시하였고 나는 풍부해지는 경험을 생각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 시작되는 육아는 아이와 함께 하기에 행복하면서도 이래저래 몸이 고달픈 일이었다. 때문에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다. 이때 생각해낸 것이 수유 일지를 작성하고 이모님(베이비시터)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 패턴을 찾을 수 있다면 아주 똑같지는 않더라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까닭이다.

며칠 동안 아이가 응가를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수유 일지에 기록된 마지막으로 응가를 한 날짜와 며칠 간의 수유량을 확인해보았다. 응가를 하고 4일이 지났고 수유량은 줄지 않았다. 조금 걱정되었지만 아마도 내일쯤은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는 다음날 변을 보았고 또 그렇게 잘 지나갔다.


처음 이모님을 구할 때는 영 서툴렀다.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해놓고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잘 맞을지 감이 없었다. 텅 빈 바둑판을 한 칸씩 색칠하는 기분으로 이모님을 구할 때 준비해야 할 것을 정리해 나갔다. 우리 집에 오는 교통편을 보고 어떤 지역에서 오는 게 수월할지를 따져보거나 이모님과 면접할 때 물어볼 것들을 적어보았다. 현재 급여 시세와 우리가 제시 가능한 범위도 확인했다.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름대로 또 할만했다.
물론 아무리 정리를 잘하고 패턴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육아는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급작스레 맞이하는 상황을 줄이고 그만큼 내 에너지도 아낄 수 있었기에 나름 만족스러웠다.




첫째가 자라고 어느 순간 둘째도 태어났다. 나는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과거 싱글이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퇴근 후 무얼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싶을 정도로 삶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체력은 떨어지고 시간은 쫓기고 책임은 늘어갔다.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나는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력서를 정리하고 수유 일지를 기록하며 짜임새를 만들어 갔다. 바뀐 삶을 살아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그만큼 간절했다.


덕분에 ‘워킹맘은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저 살뜰히 그 시간들을 버텨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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