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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Jun 24. 2022

1호 팬이 되었다

 넌 감동이었어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는 반장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반장선거가 있다며 출마의사를 보이기에 “어 그래 한번 해봐.” 하고 가볍게 응대하고 말았는데 딸은 진심이었는지 어떻게 소견 발표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긴말할 것이 없이 자신 있게 얘기하라고 일러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은서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반장이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말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용이 뭐든 큰 소리로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긴장되면 교탁을 한번 팍 내리치라고 곁들였다. 아이는 뭘 그렇게 까지 하냐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겠다는 눈치였다.


여기까지 하고 말았는데 정말로 반장선거에 나갈 줄은, 반장이 되어 올 줄은 몰랐다.

신기하기도 해서 아이에게 물었다.


“은서야, 소견발표 때 뭐라고 그랬어?”

“응,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겠다고 했어.”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쩜 너는 이렇게도 너답니.




첫째는 어린이집 시절부터 선생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친구들과도 두루 잘 지냈다.

“은서는 마음씨가 참 고와요.”
“은서는 인성이 좋아요.”


어린 시절부터 손주를 돌봐주시던 엄마도 말씀하셨다.

“은서는 따뜻해.”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여러 사람을 두루 받아주는 성격인지라 은서는 어딜 가든 잘 지냈다.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초등학교 옆으로 이사 가면서 새로이 만나는 친구 중에 마음에 맞는 아이가 있으면 집으로 초대하라고 귀띔해 주었다. 아이는 코로나 중에도 사교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거리두기 제약 속에서도 새 친구를 사귀었고 종종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놀았다.


은서는 유달리 측은지심이 강한 아이였다. 누군가 힘들거나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돕고 있었다. 친구들과 물놀이하러 갔을 때 누군가의 슬리퍼 한 짝이 떠내려가자 쏜살같이 달려가 주워온 것은 다름 아닌 은서였다고 선생님이 얘기해주었다.


출장 가서 아이와 통화할 때면, “엄마 잘 지내다가 가능하면 빨리 와. 내가 기다리고 있어요.”라는 심쿵 멘트를 잊지 않았다. 가끔 몸살 기운이 있어 침대에 누워 있으면 손수건에 물을 적셔 가만히 이마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러니 이런 아이의 입에서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겠다는 말은 어찌 보면 지극히 은서스러운 말이었다.


친구 관계에서 겪는 갈등을 털어놓을 때도 아이는 한결같았다. “엄마,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그 아이가 자꾸 놀자고 해요. 나는 가만히 있고 싶은데.” “엄마, 내가 누구 좋아한다고 수지에게 얘기했는데 그걸 수지가 다른 아이들에게 말해버렸어요.” 하며 속상해했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세상이고 그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손해를 보고 마는 은서는 빛이 났다. 은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이였다. 누굴 보고 배웠기보다 그냥 타고나기를 그러했다. 그래서 이 아이와 말을 하고 있으면 절로 무장해제가 되고 팬이 되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당에 다니는 우리 가족은 얼마 전 민서의 첫영성체를 맞이했다.

첫영성체를 받기 위해 새벽 미사도 참석해야 하고 성경필사도 완수해야 했으며, 매주 일요일의 대부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사교성 많은 아이에게 주말의 절반을 할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두 달이 넘어가던 무렵 열심히 하던 민서가 드디어 열을 내며 말했다.

“엄마, 왜 해야 하는 거야? 나 이거 안 할래! 너무 힘들어.”


아이는 떼를 쓰고 성질을 부렸다. 강제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갑자기 시작된 일련의 스케줄에 따라 살게 된 아이였다. 성당에서는 첫영성체의 의미에 대하여 나름대로 풀어서 설명해주었지만 아직은 아이였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하루에 적지 않은 양의 글을 베끼는 일도 기도문 암송도 쉽지가 않았다.


첫영성체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최소한이었으나 신앙은 강요할 수 없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었다. 버거워하는 민서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와 함께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뿐이었다.

“하고 싶다면 일단 최선을 다해보자.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자. 네가 스스로를 도울 때 다른 사람도 너를 도와줄 거야.”


그 뒤로 민서는 몇 번을 더 성질을 내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4개월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날, 첫영성체를 받는 아이들이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를 듣는데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이 났다. 항상 누군가 우리 곁에 있다는 따뜻한 가사도 좋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와 표정에서 지난 시간이 읽혔다. 실로 울고 웃으면서 보낸 시간이었다. 싫다고 떼를 쓰고 한바탕 난리도 치르며 아이는 첫영성체를 위한 과정을 빠짐없이 성실히 마쳤다.  




한창 회사 일로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뜬금없이 민서에게 물었다.

“민서야 만약 후회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응, 자고 일어나면 좋은 추억이 되어 있어.”


그 말에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불을 끄고 누웠기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들키진 않았지만 나는 아이가 잠든 옆에서 숨죽이며 울고 말았다.


최선을 다하리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고 너를 도우리라. 여름을 알리는 빗방울 소리에 잠든 아이를 보면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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