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방법을 찾고 싶을 때, 내가 가지 않은 길을 먼저 떠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참 막막하고 고단할 때, 말 한마디가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말 그대로 한줄기 빛처럼 비추는 그 햇빛을 쫓아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빛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아프고 시리던 순간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마음이 풀렸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강연이 있다.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던 서른 초중반 시절. 한동안 매일같이 출퇴근길에서 반복하며 듣곤 했다. 메타(구 페이스북)의 COO이자 'Lean In' (주: 앞으로 기울이라. 적극적으로 뛰어들라.)의 저자 셰릴 샌드버그. 그가 일러준 '여성으로서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의 3가지였다.
#1 Sit at the table 네가 무엇이 필요한지 말해줘
'남이 알아주겠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니까.'
'남'은 내가 아닌 모든 사람이다. 회사도 상사도 남편도 친구도 가족도 될 수 있다.
남은 내가 열심히 하는 건 알겠지만 왜 열심히 하는 건 데까지 관심이 닿기 어렵다.
때문에 주변에 종종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요.' '나는 어떤 일을 맡고 싶어요.' 말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마케팅이 하고 싶어요."
처음에 의사표현을 했을 때 부서 내 동의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케팅을 왜 하고 싶은지, 마케팅에 와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표현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케팅으로 바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부서 사람들은 ‘다음에 다시 자리가 열린다면 고려해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고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원하는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부서를 옮기고 싶어요."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팀에서 10년 정도 있다 보니 소위 비슷한 계열의 제품을 출시할 때는 어떻게 판촉계획을 짜고 행사를 진행해야 할지 길이 훤히 보였다. 수월했지만 그만큼 챌린지도 없었기에 흥미가 점점 떨어졌다. 커리어가 고인물처럼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예 성격이 다른 종류의 제품과 서비스를 맡아보고 싶었다. 새로운 부서로 옮기고 싶다고 여러 차례 회사에 얘기했다. 처음엔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제품을 책임질 수 있겠냐는 피드백도 있었다. 회사 내 성장동력을 찾는 워크숍에서 마켓 리서치를 통해 뽑아낸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내가 생각한 시장 진입 전략을 공유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몇 달 뒤 원하던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
"쉬고 싶어요."
둘째를 낳고 몇 개월 뒤 복직을 했다. 육아를 도움받긴 했지만 신제품 출시 준비 덕에 야근하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체력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가 힘들 정도의 체력이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면 이내 멀미를 했다. 늘 편두통에 시달리고 몸은 멸치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한 십 년 정도 일하니까 이제 끝이구나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상사에게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고 묻기에 아파서 그런다고 했더니 네가? 아님 아이가?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힘들어 집중해서 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네가 아프면 병가를 써.”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3개월간 병가를 내고 쉬었다. 그리곤 돌아와서 다시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그해 여름 나는 변함없이 신제품을 출시했다.
#2 Make your partner a real partner 당신의 배우자와 삶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그게 너무 어려웠다. 결혼 초, 살아온 배경이 많이 달랐던 나와 남편은 험난한 미래를 스스로 예견했던지 앞으로 10년 동안은 어떤 선택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저버리고 싶은 순간이 나나 남편이나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나고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는 등 삶의 여러 이벤트들을 쫓느라 세월이 가는 것을 다행히 잊고 살았다.
10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이 부딪쳤다. 생각하는 방식, 사고나 논리도 다르고 동기 부여되는 이유도 달랐다. 도무지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어려운 숙제였다.
나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편이었고 남편은 그 말을 별로 귀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이 포기하게 되었다. 힘을 빼고 남편을 대하게 되었다.
“어, 잘했네.”
영혼이 가득 담기진 않았지만 그와 부딪힐 일도 없는 말이었다.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하여 그냥 잘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태도가 바뀌면서 남편도 조금씩 변했다. 나는 남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의 생활과 취미를 지지하였다. 우리는 십 년 차가 넘어서야 조금씩 파트너십이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주말에도 방에만 있던 남편이 어느 순간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거나 조용히 산책을 다녀오기 시작했고, 설거지를 하며 이따금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는 한편,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처음엔 걱정했지만 그와 나는 직장에서 어느덧 십수 년 차였기에 그 연차 직장인이 갖는 애환과 고달픔이 비슷했다. 나의 시선대로 내가 생각하는 삶을 덤덤히 풀어나갔고 남편도 회사생활하며 느꼈던 바이기에 나에게 공감했다. 그 무렵 남편의 권유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3 Don’t leave before you leave 미리 겁먹지 않아도 돼
나는 행동이 빠른 편이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성격과는 다르게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 삶의 순간이 있었다.
마케팅 지원하고 떨어졌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발령을 받았다. 착잡했다. 이 상황은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일단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서 사람들은 내가 그만둘 것이라 여겼노라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뭐라고? 회사를 그만 둘 정도까진 아닌데?’ 하고는 넘겼다. 회사에서는 씩씩하게 지방에 내려가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곤 해외 지사 근무를 보내주기도 했다.
남편과의 사이가 소원했을 때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던 친구들이 모이면 남편과의 힘든 일상부터 털어놓았다. 말 안하고 어디를 놀러갔느니,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보라했더니 안 와서 야근하다 결국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느니 남편 얘기로는 날을 새고도 남았다. 그중에 유일하게 싱글이었던 친구는 “너희들 덕분에 별로 결혼하고 싶지 않아졌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들 중 누구도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역치값을 뛰어넘을 만한 자극은 없었고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갈등이 있을 때
남편이 말했다. "기다려봐. 그들이 너에게 어떻게 하는지 보고 결정해." 나는 매일이 괴로웠지만 먼저 결정하지 않고 참았다. 덕분에 마음에 진 빚이 없었고 회사를 나올 때는 홀가분했다.
크고 작은 경험을 쌓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것이 실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진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시일에 쫓기는 일이 아니라면 그저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 되곤 했다. 때가 되면 상황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게 했던 일은 내가 성장하면서 더 이상 괴로운 일이 되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은 자연히 사라져 버렸다. 조급하게 결정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나 혼자 오롯이 판단해서 결정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의 8부 능선쯤 지났을 때 셰릴 샌드버그의 3가지 조언이 무슨 뜻인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는 모르고 일단 따라 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강연을 반복해서 듣고 나서는,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라고 되뇌이곤 했는데 지나고 나니 샌드버그의 말이 맞았다. 이 사람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