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라도 참석하고 그래.”
“(인맥) 관리 좀 해.”
예전 직장에서 종종 들었던 말이다. 번번이 자리에 참석하라는 요청을 물리쳤다. 저녁 먹고 가라는 말에 "괜찮아요. 호호", 또 보자는 말에 "네에" 하고 흐물거리며 답했다. 그리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삼십 대에 세운 목표는 딱 3가지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내 실력을 발전시킨다.
인생의 큰 결정을 하지 않고 마흔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덕분에 회사 내 ‘카더라’ 소식에 어두웠고 가끔은 내가 욕을 먹는지도 몰랐다. 그저 매일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했다.
그런데 나,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입사 후 3~4년은 회사 사람들과 놀기에 바빴다. 퇴근 후 젊은 싱글들이 모여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주말에도 사람들과 MT를 가거나 하며 무리 지어 어울리곤 했다. 아는 사람이 많은 회사 생활은 즐거웠다.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뚫기 힘든 거래처와도 술 마시고 늦은 시간까지 어울리다 보면 다음날 친해져서 거래를 트거나 할 수도 있었다.
이런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 때는 다음날 일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결혼 전에는 큰 부담이 없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커리어도 본격적으로 꾸려나가는 시기가 되니 늦게까지 이어지는 저녁자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그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가진 적 없던 의문이 들었다. 왜 저녁자리를 가야 하지? 왜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지?
#1 함께 하는 목적이 뭘까?
회식 자리에서는 업무에 치여 못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조언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와 소원한 관계를 풀기에도 그만한 시간이 없었다. 가끔씩 술을 마시고 벌어지는 실수들도 있었지만 으레 회식이니까 있을 법한 일이었다. 회사 초년 시절에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경험하는 게 즐거웠다. 드라마에서 보던 사회생활을 하는구나 싶어 모든 게 신선했다. 어느 순간 같은 내용으로 자리가 반복되자 점점 지루해졌다. 회식이 잡히면 언제까지 있다가 나와야 자연스러울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1차를 넘어 2차, 3차, 4차까지 갔다는 무용담도 한두 번이었다. 친분 도모를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하나. 새벽을 넘어가는 술자리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 싶었다.
팀 회식 자리였다. 삼겹살을 먹고 2차로 노래방에 갔다. 팀장은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더니 옆 사람과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한 컷이 떠올랐다. 회식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있어야 하는 그럴듯한 모습 중 하나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얘기를 나누는 일은 즐거웠다. 하지만 할 일을 놓아두고 노는 것은 마냥 즐겁지가 않았다. 발표자료를 만들거나 프로모션 계획을 짜야하는데 그 시간에 마시는 술이 차마 넘어가지 않았다. 내일이 시험인데 노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계속 불편했다. 저녁 자리에 가는 시간이 어느 순간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저녁식사 자리를 권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나서 자연스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 시간에 하나라도 끝내고 집에 일찍 가고 싶었다.
#2 체력이 달렸다
일도 잘해야 하고 애도 기르며 저녁자리까지 하자니 몸이 너무 괴로웠다. 회식 다음날이면 비몽사몽 할 때가 있었다.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업무에 임하는 시간을 잃어버리는 게 아쉬웠다. 어떻게든 내가 오롯이 집중하는 때가 있으면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내 체력이 충분히 받쳐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빼앗기는 일을 줄이고 싶었다. 애들 키우고 일하느라 쫓기는 마당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한편으론 사치였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꼭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도 시간은 늘 부족했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할 시간이 없었다. 1시간을 2~3시간처럼 써야 했다. 기력을 짜내 일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그 기력을 잃어버릴 순 없었다.
#3 인맥관리가 정말 도움이 될까?
저녁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고 인맥관리에 힘을 쏟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내가 힘들고 외로웠을 때는 정작 그 인맥이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실력이 없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했기 때문이었기에 남들을 만난다고 혹은 조언을 듣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편 3,4절>
JYP의 수장 박진영이 말했다. “사람들은 본디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도와주기 마련이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쌓으라 조언했다. 실로 그랬다. 저녁자리에 가든 안 가든, 사람들은 얻을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에게 찾아오고 연락했다.
어느 순간 내가 '나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인맥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여러 고개를 넘어 찾아 낸 옹달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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