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 2kg를 네 사람이 먹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 나는 뜻하지 않게 매년 곱창챌린지를 하고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일 년에 한 번 볼 때마다 지인이 곱창을 도매급으로 후원해준 덕이다.
2kg가 얼마나 될지 미처 가늠하지 못했던 작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친구 중 하나가 전기 그릴을 싣고 왔다. 한단의 부추 무침까지 곁들이면 자연스레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우리의 저녁은 어느새 시시 껄껄한 이야기와 끊이지 않는 곱창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윽고 한참의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가 마무리되면 자리를 옮겨 침대와 소파에 도란도란 누워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새벽에 이르러 도저히 졸음을 참지 못한 누군가가 스르륵 잠이 들고서야 마침내 불이 꺼진다.
무엇을 의식하거나 목적을 가지고 레퍼토리를 짜는 것도 아닌데 일상과 자아 성찰, 고민거리 등 다양한 주제는 가벼운 얘기 – 심각한 얘기 – 웃긴 얘기 – 슬픈 얘기 순으로 기가 막히게 버무려져 강약 조절을 이룬다. 덕분에 한순간도 흐름이 끊기거나 집중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지루한 얘기는 10분도 길게 느껴지는데 우리의 이야기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시간이 부족하다.
중학교 때 만나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은 우리의 관계는 10대, 20대, 30대의 삶의 계단을 순차적으로 오르는 동안 서로의 희로애락을 면면히 함께하며 응원하고 때론 함께 울기도 했다. 고스란히 내보이며 지내온 세월 덕분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포장할 필요가 없었고 꺼내지 못할 얘기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대략의 속사정을 알기에 어떤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지 알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사회적 위치를 기반으로 만나는 사람들이기에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공감대를 이루기 수월한 한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관계가 많아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 위주로 보여주게 되었다. 정제되고 교양 있는 언어와 행동으로 좀처럼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도 적었다. 이러한 관계는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오직 이런 모습만 갖고 있지 않기에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여유를 갖게 해주는 친구들이 소중했다.
직업상 혹은 부모이기에 책임져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모습에서 잠시 벗어나 어른인 ‘나’를 그 시절 어린아이로 돌려보내 준 시간이 소중했다. 철없는 중학생으로 돌아간 나는 친구들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느끼는 대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한참을 낄낄 댔다. 놀리는 녀석이나 놀림을 당하는 녀석이나 속없이 웃었다.
어느 순간 일상 모드에서 벗어나 평소에 꺼내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등 ‘What I Have’가 일상의 주제였는데 친구들과는 ‘Who I am’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그에 대한 내 의견은 어떻고 미래를 어떻게 꿈꾸고 있는지. 얘기하고 싶지만 마땅히 꺼낼 곳이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다. 친구들과는 내용이 완성되지 않아도 되었고 표현이 서툴러도 상관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얘기를 둘러앉아 나누었고 또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몇 해 뒤면, 이런 친구들과 만난 지 30년이 된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대략 40년이라면 남편과 아이들과는 이제 막 10년이 지났다. 가족과 가족 사이에 친구들이 있는 셈이다. 친구들이 부디 부단히 부딪히고 있는 인생의 파도를 잘 건너기를. 그리하여 서로에게 여전히 낄낄 댈 수 있는 사이로 남아주기를. 우리의 곱창챌린지가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