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우리 병원에 와 줄 수 있나요?
당시 내가 속한 부서는 '시술'이라 불리는 수술보다 덜 외과적인 치료에 사용하는 제품을 판매했다. 최소 침습(minimally invasive)이라고 해서 치료에 필요한 최소한의 피부를 절개하는 시술은 수술에 비해 시간이 짧게 걸리고 환자의 회복이 빨랐다. 때문에 내과계에서는 어느 정도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외과 선생님들도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점차 늘어갔다.
시술에 쓰이는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에서는 제품 사용법뿐 아니라 시술에 필요한 전반적인 술기(의학적 기술)를 함께 교육하는 부서(customer education, professional education 등 회사마다 부서명이 다름)를 별도로 두어 의사 선생님들이 새로운 치료 방법을 익히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덕에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을 직접 만나는 영업사원 역시 제품뿐 아니라 시술 전반을 이해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시술을 처음 익힌 선생님은 수련을 받았다 하더라도 환자를 치료할 때 얼마간은 제품과 시술법에 익숙한 영업사원이 참관해주기를 바랐다. 환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제품을 선택하고 시술을 어떻게 설계할지 같이 고민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아무래도 도움되었기 때문이었다. 영업사원들은 여러 병원을 담당하며 다양한 케이스를 참관한 경험이 있기에 시술을 잘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전해주는 역할도 했다.
영업사원은 어떻게 교육을 받는 걸까?
단순히 제품을 아는 것뿐 아니라 의사 선생님과 시술에 대한 의견도 나눌 수 있는 영업사원을 지향했기에 회사에서는 입사 후 꽤나 타이트한 교육을 시켰다. 입사 첫날, 마주한 마케팅팀 과장님은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 하는 미소와 함께 전공서적처럼 두꺼운 책 한 권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리곤 웃으며 말했다. “레이치 씨, 이게 1권이야. 빨리 끝내고 2권도 얼른 보자고.”
그렇게 몇 주 동안 회사에서 교육을 받으며 제품과 서비스, 내가 속한 산업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부터는 같은 팀 선배들을 차례로 따라다니며 병원에서 시술을 참관했다. 그렇게 입사 후 첫 한 달이 지난 뒤 팀장님이 말했다. “이제 교육 한번 제대로 받고 와야지. 본사 가서 공부 좀 하고 와.”
처음 팀장님의 말과는 다르게 베이징으로 교육을 받으러 가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사연이 있었다. 본래 교육은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진행되었는데 내가 입사한 기간 동안 중국에 많이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그 많은 인원이 미국으로 가느니 트레이너가 중국으로 파견 가는 게 낫다고 결정되었다고 했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와 인도 등 아시아권 국가들은 중국으로 교육을 가게 되었다. 장소가 변경됨에 따라 원래 4주였던 교육도 압축해서 3주가 조금 안 되는 기간으로 바뀌었다. 다만 배울 내용은 그대로였기에 역대급으로 타이트한 교육이 될 것 같다며 이미 다녀온 선배들은 혀를 차면서 걱정했다.
나는 같은 팀 3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떠났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기다리던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이 있던 넓은 레지던스에서 두 사람이 한 방을 썼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라 놀랐지만 거실 소파에 앉아볼 틈도 없이 일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식당으로 가서 토스트 하나 먹고는 셔틀버스를 타고 5분 거리의 트레이닝 센터로 갔다. 그곳에서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받았다.
트레이너는 미국 사람이었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알면 아는 데로 모르면 모르는 데로 옆 사람과 물어가면서 공부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신입사원이었기에 트레이너는 중간중간 사람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때 이해되지 않는 점을 다시 물어보면서 빠지는 부분 없이 수업 흐름을 쫓아갔다. 용어도 익숙지 않고 영어를 쓰는 게 편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수업을 따라가려 애를 썼다. 트레이너는 중국 사람들을 위해서 더욱 천천히 여러 번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교육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어 통역을 따로 붙였다. 쉬는 시간에 중국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중국은 해부학 등 의학용어를 모두 자국어로 바꾸어 썼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그대로 사용하기에 트레이너가 쓰는 영어를 따라가는 게 맞았지만 중국 팀에서는 입장 차가 있을 법했다.
여하튼 처음 듣는 의학용어에 우리 제품이 쓰이는 시술이 무엇인지 배우고 우리 제품의 특징과 경쟁사들의 제품 그리고 의학 논문까지 빠르게 훑느라 어디를 놀러 갈 여유도, 가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하루 수업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 시간이었다. 우리는 인근 식당에서 서둘러 저녁을 먹고 잠깐 쉬었다가 선배의 방에 다 같이 모여 서로 물어가며 늦은 시간까지 공부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어제 배웠던 내용을 시험을 보았다. 결과가 한국에 있는 팀장님과 부서에게 실시간으로 공유되었기에 정신을 바싹 차릴 수밖에 없었다. 방에 돌아오면 지치듯 침대에 누웠다. 어떻게 잠을 잤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사람들 얼굴에서 표정이 점차 사라지고 지친 기색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20대였고 대학을 막 졸업한 신입사원의 패기가 가득했지만 교육은 쉽지 않았다. 점수 잘 받기를 떠나 일정 그 자체를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오전 교육이 끝나면 한 시간 정도 점심식사 겸 휴식 시간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현지 식당을 이용했고 한국과 인도 사람들을 위해서는 매번 피자, 파스타 등을 배달 음식이 준비되었다. 처음에는 맛있던 식사였지만 점차 미각을, 아니 의욕을 잃어 갔다. 그러던 중 거리에서 써브웨이(샌드위치 패스트푸드)를 발견했을 때 가뭄에 단비 오듯 반가웠다. 한국에서는 한 끼로 충분했을 테지만 물리는 음식과 긴 교육에 지쳐있던 나는 몇 개를 더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까지 먹으며 기분 전환을 하곤 했다.
교육 과정이 벅찼지만 한편으론 몰랐던 내용을 배우는 게 즐거웠다. 특히 시술은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수술만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병든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허벅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혈관 안으로 얇고 긴 관을 넣어서 사람을 치료하기도 하는구나. 새로운 기술이라고 했지만 이미 1920년대부터 시도되고 있던 치료법이었다. 방법과 도구가 조금씩 발전되어 오늘날에 이르러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시술로 환자를 치료한 증례(수술 사례)가 쌓이고 의미 있는 결과의 임상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의학계에서도 안전하고 치료 효과가 있고 수술에 비해 다양한 장점이 있는 치료법으로 자리 잡아갔다. 내가 담당하는 제품은 바로 그런 새로운 술기(의학적 기술)에 쓰이는 제품이었다.
어? 들린다, 들려!
힘든 시간을 버티고 모르는 것을 배워가며 새로운 세상의 문을 조금씩 열어갔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선배들과 동행방문(실제 직무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배움, on the job 트레이닝 일종) 갔을 때였다. 시술 참관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안 들리던 말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의사 선생님과 선배가 당최 무슨 소리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임팬딩 오클루젼(impending occlusion)인 것 같아.”
“네, 교수님. 조금 보수적으로 보시는 거죠?”
“응, 한 사이즈 작게 써야 할 것 같아.”
혈관이 곧 완전 폐색(완전히 막힘)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혈관을 무리해서 개통하다가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원래 제품 선택 가이드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를 써서 합병증을 피하면서도 혈관을 열어주어 혈류가 흐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었다.
벅찼지만 날아다닐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준 교육 덕분에 나는 병원에서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조금씩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본 것들을 잊기 전에 어딘가에 적어두고 싶었다. 자연스레 노트를 펴고 그날 보았던 시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시술을 했고 환자 나이와 성별, 기저질환이 있었는지 여부. 그리고 시술 순서와 그때 사용한 제품들을 적었다. 어떤 제품을 써서 치료 부위에 접근했고 왜 그 제품을 선택했는지. 이러한 신체 구조일 때는 동일한 기능을 하는 제품들 중 어떤 제품이 나은지 환자가 이런 병력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같은 시술이라 하더라도 제품 선택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기억나는 대로 적었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썼다. 시술 공책에 케이스가 조금씩 쌓여가면서 내 생각도 정리되고 시술을 보는 눈이 점차 길러졌다. 베테랑 교수님의 시술을 보면 왜 저런 테크닉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나를 찾는 병원이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시술을 배웠고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지만 시술을 참관하면서 제품 사이즈를 확인해주거나 다른 병원의 사례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시술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매출은 자연히 따라왔다. 긴 시술을 할 때는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날 때도 있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뛰어 다니며 하루에 몇 케이스씩 참관을 가는 날도 적지 않았다. 세상을 지탱하는 톱니바퀴의 한축이 되어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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