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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Oct 14. 2022

"내가 이랬을까?"

아이 키우다 드는 생각

둘째 아이는 성격이 확실한 편이다.

좋고 싫음의 구분도 명확하고 무슨 얘기를 듣거나 상황에 마주하면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보인다.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온천에 갔다.

온탕에 다 같이 앉아 있다가 너무 덥다며 둘째는 작은 바가지에 찬물을 떠 오겠다며 탕 밖으로 나갔다.

탕 밖에 서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쳐서 자연스럽게 손가락 하트를 보냈더니 아이는 들고 있던 작은 바가지를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화답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아이들 치과를 집 근처로 옮겼다. 첫째의 썩은 이를 치료하러 간 김에 둘째도 검진을 받으려고 날짜를 잡았다. 예약을 했지만 주말이었기에 치과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진료 테이블에 누웠다. 첫째의 어금니 치료를 마치고 둘째 차례. 첫째의 치료를 유심히 지켜보던 둘째는 진료 테이블에 눕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남편과 내가 몇 번을 어르고 달래며 치료하는 게 아니라 오늘은 보기만 하는 거라고 말해도, 급기야 진료를 마친 첫째까지 나서서 '민서는 그냥 확인만 하는 거야.'라고 설명해주어도 아이는 여전히 싫다고 했다.

돌아보면 그때 그쳤어야 했는데 무슨 사명감에서인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아이를 설득했다. 결국 진료 테이블에 아이를 눕혔는데 여전히 못마땅했던 둘째는 허둥거리다 왼쪽 신발이 벗겨졌다. 성질이 날 때로 난 아이는 사자후를 토해냈다.


내 신바아~알!!!!!

그 소리에 아이의 입 안을 들여다보려던 선생님은 이마를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고 함께 있던 2명의 간호사 선생님들 역시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었다. 순간 귀가 먹먹했다. 대충 검사를 마치고 아이를 안고 나와서는 대기실 복도를 빠르게 지나쳤다. 병원에서 있던 사람들은 토끼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고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아이들을 챙겨서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고는 연신 허리를 숙이고는 도망치듯 치과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며칠 전.

요즘 아이들은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기 전까지 가방에서 수저통과 물통을 꺼내 싱크대에 담아놓고 손발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는 연습을 한창 하고 있다. 여러 번 얘기하는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얘들아, 저녁 먹기 전까지 우리 각자의 일을 하고 식탁에서 모이자."라고 한번 얘기하고 만다. 대신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기로 약속했다. 씻을 시간에 씻지 못하면 그날은 그냥 자고 식사 시간에 저녁을 먹지 않으면 별도의 식사는 없는 셈이다. 제법 잘 지키는가 싶더니 둘째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안 둘째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얼마간 짜증을 내다 말면 '다음에는 잘하자'하고 목욕을 시켜주려 했는데 아이는 점점 열을 올리더니 나를 공격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아이를 바라보고 예의 바르지 못한 말에 대해 혼을 냈다. 그리고 10분 동안 생각해보고 왜 혼났는지 얘기하자고 했다. 아이는 씩씩대며 분을 이기지 못하더니 마지못해 주저앉아 10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아이는 여전히 감정이 누그러지지 않는 듯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할 말이 없었다. 잠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이 아이를 가르치는 건 어렵다. 논리적으로 풀어내면 또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맞설 터이다.

정리되지 않은 내 마음이 툭하고 흘러나왔다.


"민서야, 너는 말도 잘하고 재밌고 함께 있으면 즐거워. 네가 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깡충깡충 뛰는 걸 보면 엄마는 기뻐. 다만, 민서가 가끔 예의 없이 말할 때가 있거든.

점점 크면서 엄마 없이 혼자 생활하고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텐데

엄마는 우리 딸의 많은 장점이 예의 바르지 못한 말 한마디에 묻혀버릴까 봐 걱정이 많이 돼. 이렇게 이쁜 아이가 사람들에게 미움받으면 어쩌지 하고 솔직히 걱정이 돼."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눈이 점점 붉어지더니 이윽고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나도 아이를 꼭 안았다.

"알겠어요."

아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둘째에 대해 상담을 하다가 들은 말이 있다.

"아이가 이해가 안 가시면 본인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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