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알고 싶지 않았어요.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작년 말, 나는 열세 살 때부터 열아홉까지 모든 불행들을 성장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고, 세상 모든 일엔 장단점이 있다는 말을 맹신했다.
그리고 스무 살, 우울증 투병 초기에 그런 생각들은 구겨서 쓰레기통에 처박아두고 싶은 마음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이제 이 말이 끔찍이도 싫다. 고통을 ‘성장’으로 포장해 뒀을 뿐이다. 고통은 고통이다. 날 절벽 끝으로 밀어 넣은 경험들 덕분에 성장했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 혐오스럽다. 강제로 원치 않은 성장을 해야 했고, 그렇게 위태롭게 삶을 쌓아왔다.
그러나 자조적인 표현을 쓰자면, 나는 ‘의미부여 장인’이었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우울증 투병 반년이 되어가니 우울증의 장점을 다섯 개나 찾아버렸다.
풀 배터리 검사(Full-Battery)를 통해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불안과 우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은 많이 곪아 있었고, 우울은 만성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젠가는 터질 폭탄이, 재수 생활을 촉발제로 하여 조금 이르게 터진 셈이었다. 의미부여만으로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건 원래도 나의 대표적인 특성 중 하나이다. 어떤 문제가 닥쳐도 본능적으로 바로 해결하려 한다.
특히 올해는 엄청난 우울감을 이기고 공부를 해야 했기에 어떻게 해서든 나를 어르고 달래 한 글자라도 더 읽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면, 자살 사고가 극심한 날은 그날 할 일 리스트에 ‘죽지 않기’를 포함시켰다. 그러면 살아있는 게 조금 수월했다.
또는 수시로 내 상태를 예민하게 점검하여, 상태가 조금 나아지자마자 책을 펼쳤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나는 조금 힘든 학창 시절을 보냈고, 워낙에 착하고 여린 기질 탓에 성인이 된 후로는 이기적으로 나를 위해 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신 질환을 투병 중인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니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의 증상 중에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게 있다. 그래서 나는 자극적인 뉴스를 잘 못 본다. 마음이 아파서. 곧 정신질환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약자들,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염세적인 특성이 최고조에 달했고, 그러자 내가 타고난 것(재산과 화목한 가정)들을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역겹게 느껴졌다. 그걸 약자들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꿈을 바꾸었다. 뇌인지학과에 입학하여 뇌 질환을 연구하고, 돈을 많이 벌어 기부하고 싶다. 세상 전부를 고치는 건 불가능하지만 작은 세상 여러 개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전 4년 간 나의 꿈은 물리학자였다. 순전히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진로였다. 이젠 동시에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진로를 희망하게 되었다.
재수와 우울증을 동시에 겪은 나인데, 앞으로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 주변의 어린 성인들이 사회에 나가면 엄청 힘들다고 그렇게들 겁을 준다. 난 두렵지 않다. 내가 이미 겪은 것보다 더 힘들어질 수 없다. 이건 상담치료 선생님을 포함해 내 주위의 모든 30대 이상의 어른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아직 내 우울증은 낫지 않았다. 위의 장점들도 내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지만 장점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죽지 않겠다는 장담을 할 수 없고, 인지 왜곡은 여전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으며, 그래서 여전히 삶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밀곤 한다.
긍정적으로 포장하여 글을 끝낼 수도 있지만 굳이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그저 솔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사고는 장점을 찾는 데서 멈출 수 없고 부정적으로 끝없이 파고들 뿐이다. 이게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