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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Nov 25. 2023

프롤로그: 조금 긴 겨울나기

나의 겨울을 소개합니다.

열두 살 때까지의 내 삶은 완벽에 가까웠다.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만 하는 행복한 아이였다.



13세. 타지로 전학을 가게 되며 상황이 급변했다. 원체 소심하고 낯 가리는 성격 탓에 한 친구에게 약한 괴롭힘을 당했고, 적응장애(스트레스를 겪은 후 일정기간 이내에 발생하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감정적 내지 행동적 장애. PTSD와 유사하다.)를 얻었다.



14세. 중학교에 입학하고 강박증불안이 생겼다. 나는 여전히 겉돌았고, 더욱 의기소침해져 말을 자주 절었다. 처음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15세. 시각전조편두통(시각적인 전조증상이 있는 편두통)이 생겨서 건강 염려증(불안장애의 일종)에 기름을 부었다. 뇌암이나 뇌출혈은 아닐지 벌벌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6세. 여전했다. 선택적 함구증(특정 상황에서만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이 생기고 식욕을 잃었다. 적응장애는 여전했고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서서히 외향적으로 성격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4년간 날 괴롭혔던 인간관계 문제에서 벗어나, 바라던 대로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대학 입시가 되었다.



고등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자살‘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나보다 영특한 친구들 사이에서 비교당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혐오가 심해졌다. 6시간은 자야 하는 내가 세 시간씩 자며 과제를 하고 시험공부를 했는데도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20세. 재수 종합 학원에 들어갔고, 5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녔다. 시간이 지나니 병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안장애(범불안장애, 건강 염려증, 공황), 상세불명의 우울장애, 불면증.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다. 5월에 약물치료, 6월에 상담치료, 8월에는 TMS(경두개 자기 자극술)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수라는 큰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호전을 기대할 수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목표는 ‘완주’가 되었다. 수능 날까지 살아있을지 여부도 미지수였다.


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자라는지, 바람은 어떤지 설명했으니, 필자가 그걸 기어이 공개적으로 밝히려 하는 이유를 짚고 넘어가겠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나쁘게 말하면 호구 같고, 좋게 말하면 착하고 여린 기질을 가지고 있다. 나보다 남이 아픈 게 더 싫은, 그런 사람이다.



겨울을 지나며 나의 계절을 남에게 숨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위로 쌓여야 할 눈송이 몇 개가, 아끼는 사람의 머리 위에 얹어지는 걸 바라만 봐도 내겐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 몇 개의 눈송이까지도 온전히 나에게 내리는 게 차라리 나았다.



그러나 대략 반년 전, 결국 들켜버렸다.

나의 긴 긴 겨울을.



이미 눈으로 나의 온 세상이 덮인 후였다. 폭설에 깔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공황발작이었다. 내가 숨을 쉬려면 내 위에 쌓인 눈을 다른 사람 쪽으로 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 나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보이는 첫 번째 이유이다.


상담사, 주치의 선생님, 엄마. 지금까지도 나의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계신 세 분께서 질리도록 말씀하셨다. 눈, 조금은 치워버려도 된다고. 굳이 다 떠안고 있는 건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또한,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가 위안을 받기를.

나의 모든 투쟁을 기록하고 싶다.

뻔하지만, 정신 질환 인식 개선도 하고 싶고,

나는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 에너지를 전파하고 싶다.


이런 이유들도 있다.


그래서 써보는, 나의 생존 일기.

많은 걸 포기했고, 많이 억울했고, 또 많이 성장했던 내 학창 시절의 투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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