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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Nov 27. 2023

결핍이 결핍된 유소년기

부러울 것 없던 아이

‘부모님께서는 나를 애처럼 키우셨지만 나는 애처럼 크지 못했다.’



내가 나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장이다. 이번 편에서 다룰 부분은 위 문장의 앞부분인, 부모님께서 어떻게 나를 애처럼 키우셨는지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우울증을 진단받고, 병원과 상담센터에서 매주 상담을 하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될 때가 많다. 현재의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치의 선생님이나 상담사는 양육자의 양육 태도에 집중하기에, 부모님이 양육 과정에서 잘못한 점이 없는지 파고들곤 한다.



부모님께선 이제 그 혐의(?)를 벗으셨다. 처음부터 모두 내 문제였다. 그냥 내 기질이 그랬다. 불안해하고, 감정적이고, 조숙한 것 등 말이다. 모두 나의 높은 지능에 기인하는 특성들이었다. 언뜻 보면 고지능은 좋아 보이기만 하지만 나에게 있어 고지능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었다.



배경 설명은 이만하면 됐다. 이제 필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나는 양가의 첫째였다. 1.8kg의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몇 주 있었고, 그래서 발달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몸이 약해서 잔병치레가 잦았다. 결국 일곱 살 무렵 편도선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 매우 두려웠지만 부모님께서 마음 아파하실까 봐 의연한 척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조숙함이다.



지금 생각해도 부모님의 양육 방식은 훌륭했다. 짜증 대신 혼을 내셨고, 그 후엔 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안아주셨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 늘 출근 전에 동생과 나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나가셨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내가 우리 부모님께 가장 감사했던 건,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이다. 엄마께서 여행을 좋아하셔서 가능했다. 나는 네 살 무렵 처음 해외에 나가봤고, 스무 살인 현재 총 10개국을 여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홉 살 때 두 달 동안 캐나다에서 보낸 여름이다. 바위를 넘고, 나무를 오르고,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고지능의 특징 중 감정적인 것, 혹은 넘치는 감동성이 여기서 드러난다. 나는 여덟 살 무렵부터 나를 압도하는 벅참과 설렘을 느꼈다. 대부분은 해외여행을 가기 직전이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때 일어났다. 예를 들면, 캐나다에 가기 며칠 전부터 학교 수업 시간에 이륙까지 백몇 시간 몇 분이 남았는지 계산하곤 했다. 혹은 게임 ‘심즈’의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이런 큰 감동성의 시야로 바라보는 세상은 재밌는 것 투성이었다. 사소한 것에도 소리를 지르고 흥분하며 좋아했다. (이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대신 동시에 세상을 두려움 투성이로 바라보기도 한다.) 초등학생 시절,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현재 명문대에 입학한 친구들이 정말 많은 걸로 보아, 다들 나처럼 영재거나 준영재일 것 같다.



열세 살 때 전학을 가며 상황하 급격히 나빠지기 이전까지, 친구들과 매주 놀러 다니는 ‘행복한 삶’의 정석을 살았다. 나의, 12년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봄. 나의 영재성은 이렇게 어린 시절에는 나에게 좋은 영향밖에 미치지 않았다. 행복이 증폭될뿐더러 다양한 분야에 능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인 현재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란다. 이미 겪은 것보다 더 힘들어질 일은 없을 거란다. 최근 8년은 내 전체 삶의 최저점인 것이다. 그런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다음 회차부터 얘기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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