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있나요
연말입니다. 작년 입시를 하며 2024년 12월 31일까지는 죽지 않기로 혼자 다짐했었는데, 그날이 딱 사흘 남았네요. 그렇다고 나흘 후 죽겠다는 건 아닙니다. 감회가 새로워요. 초등학생 때부터 꾹 참고 재미없는 공부를 했던 첫 번째 요인인 대학 입시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입시가 끝난 지도 1년이 넘었답니다. 아직 정신적으로 안녕하지 않은 탓인지 학점 역시 안녕하진 못하지만, 비로소 대학 1학년을 수료했습니다. 정신없던 탓에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린 지 두 달 반이네요. 너무 오래 쓸쓸히 남겨둔 것 같아서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많은 것이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가면을 쓰고 다른 자아를 연기하는 것, 혼자 잠에 드는 것, 모든 게 뒤죽박죽인 머릿속을 감당하는 것 모두 아직 힘이 듭니다. 답장 한 번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걸까요... 망가진 마음을 안고 살려니 사소하디 사소한 일도 힘에 부칩니다. 이유 모르게 솟구치는 짜증과, 죽음에 대한 갈망, 그러나 죽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 그 어떤 일에도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권태도 여전하고요. (남들이 도파민 디톡스를 할 때 저는 도파민 분비를 돕는(??) 약을 먹습니다 하하..)
침대에만 있고 싶으면서도, 적막이라는 이름의 이불을 덮고, 주파수가 엉킨 머릿속을 혼자 감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밖에 나가 친구와 시간을 보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고요. 늦은 오후에 기어나가 영화 '위키드'를 보고, 술을 사 와 집에서 친구와 마셨습니다. 길었던 대학 입시의 흔적인지 종국엔 만성피로에 패배하여 생각보다 이른 시각에 쓰러져 잠에 들었습니다. 둘 다요.
엄마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돌려 돌려 인생이 재미없다고 투정을 부리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일 정도로, 재미가 없어요. 모든 일상이요. 이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들을 모아 PPT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해볼까 싶습니다.. 비참하니까,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내 존재가 세상에 득보다 실인 것 같아서 등.. 이유야 많죠.
점점 표정을 잃어가요. 나도 잃고 친구도 잃고 시간도 잃어갑니다. 나는 아직 2017, 2019, 2023년에 머물러 있는데 아랑곳 않는 시간은, 나를 2025년의 문턱 앞에 세워놓습니다. 정말 오고 싶지 않던 곳이에요. 기어이 스물두 살이 될 저 자신이 밉습니다. 20년 하고 딱 반년을 살았어요. 이만하면 된 것 같아요. 자살 충동이나 적극적 자살사고는 사라지더라도 소극적 자살사고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죽는 날까지 나의 잉태를, 나의 존재를, 그 모든 우연과 운명들을 원망하고 저주하겠죠. 자의로든 타의로든 당장 내일도 죽을 수 있는 게 우리 삶이니, 둘 모두에 대비하여 유서를 써놔야 할 것 같아요. 장기기증도 하고 싶고요. (이상한 소굴에서 강제로 장기 적출 당하지 않았다는 걸 축하하는 의미도 있죠. ㅎㅎ )
자해를 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고개를 뒤로 한껏 꺾고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우울증은 그런 병입니다. 학기 초반에 동기들은 나더러, 당연히 '과대'가 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대략 쉰, 예순 명의 동기들 중 가장 밝은 사람이 나였다는 것에 한 치 의심이 없습니다. 동기들 중 가장 덜 빛나는 사람이 나라는 것도, 확신해요.
사실 올해만 다섯 명의 이성을 찼습니다. (내가 잘나서 그들을 찼다기보단 나와 사귀면 상대가 무조건 피해를 볼 것이기에 필사적으로 밀어내기만 했습니다) 나는 얼굴도 괜찮고 성격도 좋은가 봐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런가 봐요. 내가 보기에 나는 먼지 뭉텅이인데. 구제불능 기생충인데... 얼굴도 목소리도 몸 구석구석 생긴 것도 다 마음에 안 들어요. 비물리적인 것들은 더 맘에 안 들고요. 성격이나 내가 하는 생각들 같은.
죽어야 끝납니다.
근데 죽을 수가 없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게 제 숙명인가 봐요.
한 번도 바란 적 없는 삶이라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나에게 혐오감을 느끼며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숨기고 눈으로만 웃으며
이불로 입을 틀어막고 한 시간 두 시간을 울다 지쳐 잠에 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나 봅니다.
삶이란 게 그렇게 좋으면서도 당연한 건가 봐요.
나에겐 그렇지 않은데.
왜 사람들은 살라고밖에 안 할까요.
그들이 이기적인 건 아닐까요.
왜 현재 나의 고통은 무시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결론중심적인 얘기만 해댈까요.
아주 오랜 기간은 아니어도 7, 8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요.
날 사랑한다면 날 보내주세요.
나에게 잘해주지 말아요. 내가 질리면 냉정하게 떠나 주세요.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지 말아 주세요. 내게 안 좋은 소식만 들려주세요. 그렇게 천천히 죽여주세요. 내가 부탁한 거니까 내가 가해자 할게요. 자책하지 말고 날 포기해 주세요. 난 가망이 없어요. 아무렇지 않게 죽어버릴 것 같은 날들이 많아요. 사는 게 무섭지, 죽음은 두렵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