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야기

서른이 되어서야 찾아가는 자아 (4)

by radek

나는 사랑과 관계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깨달은지는 좀 되었지만, 결코 이를 깨달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연애를 한 지 어느덧 꽤 시간이 흘렀다. 우습게도 그간은 전혀 글이 안 써졌다. 행복은 곧 나태. 나태한 삶에는 고민도, 고통도 없다. 그저 잘 익은 사과처럼 대롱, 대롱 매달려서 언제 추락하나 기다릴 뿐. 그 추락이 이제 곧 올 것이라는 묘한 자각에 글을 쓰게 된다.


아홉 개월이면 딱 세 계절이다. 그녀와 다시 맞는 가을은 익숙하겠지만,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은 여전히 새로웠다. 겨울에는 밖이 추워서 우린 따뜻했고, 봄에는 밖이 따뜻하니 우리도 따뜻했다. 그런데 여름은 뜨거워지는데 우리는 식어간다.


나는 싸우는 연애가 정말 싫었다. 서로에게 소리지르면서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웃는 얼굴에는 소리를 지를 수가 없고, 화를 낼 수가 없다.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교묘하게 사람을 끌어내리고 웃는 얼굴에도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모든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이젠 늘 그저 답답한 가슴만 남는다. 분노는 감정의 승화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또 그렇게 화를 내고 살 수는 없지. 나만 좋고, 상대는 한없이 가라앉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라앉기로 결심하였다. 서운함도, 속상함도 꾹꾹 눌러담으면 담기더라. 담다 보면 그 무게에 가라앉고, 그러다 보면 마치 내가 한없이 깊게 땅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웃긴 건, 아마 당신도 그럴 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형체만 남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