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어서야 찾아가는 자아 (3)
특별하게 이 글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 그를 배려해서 일부 각색하였다.
H는 삼형제의 장남이다. 듣기로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의 지나친 보호와 간섭에 지쳐서, 그렇지만 내 추정으론 그냥 원래 태생부터 그런 사람인지라, 어느 순간부터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사람이었다. 위대한 유교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갖춘 기본적인 도덕성은 결여된 지 오래였다. 늘 규범에 어긋나도 자연스럽고 당당한 그의 모습은 가끔씩 나에게도 원초적인 동경심을 일으키곤 했다.
20대의 중반을 즐기던 그 즈음 어느 날 H가 나에게 찾아왔다. 늘 불안정했던, 한동안 못 봤던 H가 찾아와서 나에게 고작 한 소리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는 시덥지 않은 소리였다. 친한 친구답게 대꾸했다. 어, 그때 너가 여행가서 어디 바닷가에다 평생 사랑할게 OO아 써놓고 그걸 또 찍어서 추하게 인스타에 올렸던 바로 그 OO씨구나. 그럼 결혼해, 평생 사랑한다더니 잘 됐네, 라고. 아니다 다를까, H가 이실직고한 사실은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이라서 결혼을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상황이었다. 연애한지는 고작 3개월.
그 말을 들은 후, 뭐 어찌됐든 결혼하면 되겠네라는 조언 아닌 조언과 함께 맥주 한 캔으로 떠나보냈던 H는 또 3개월이 지나서 아이는 지웠다는 소식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여자친구 손을 잡고 병원에 찾아가서 약을 받아왔다고. 그 병원만큼 무서운 장소는 없을 것이라고, 그 곳에 있던 모두가 자신이 행하려는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도 제대로 인지하지조차 못하면서 그저 어떤 필연적인 이유로 그곳에 와 있었다고. 그 필연적인 이유는 본인이 추정컨대 아마 다 비슷했을 것이라고. 돈이 없어서, 또는 부모에게 말할 수 없어서. 그녀가 그 약을 집에서 먹고 몸도 마음도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며 세상 처음으로 고통을 느꼈다고 했다.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결국 본인이 세상에 난 이유는 번식임을, 그리고 어떻게든 그 이후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는것일 뿐임을 깨달은 그 순간 다시 삶의 이유를 빼앗겼다고. 그러니 돈을 벌어야겠다고. 정말 이상한, 가부장적인, 한국적이기 그지없는 결론이라고 그 당시 생각했다.
그 이후 그녀와 H의 관계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현실을 차치해버리고 본인에게 충실했던 H는 어느새 남들보다 강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취직에, 성공에 목을 매달았다. 얼굴을 보는 날이면, 안타깝게도 그 누구보다도 헝클어진 머리와, 쓸데없이 통 큰 바지와, 술과 잘 어울리던 그는 늘 양복을 입고 머리를 넘기고 나타났다. 게다가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조급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동경하던 H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자유로움이 그의 매력이었으니까. 함께 위기를 이겨낸 것이 무색하게 그와 그녀는 그 위기가 낳은 갈등을 궁극적으로 못 이겨내었다. 그녀도 자신을 챙기느라 바빴을 텐데 갑자기 180도 달라진 그의 모습마저 감싸안자니 아마 숨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과거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아름답다. 그리곤 잊히고, 어렴풋이 닮은 어떠한 형체만이 남아있곤 한다. 마치 그 둘이 어느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열심히 적어둔 사랑의 서약들이 고작 파도 두, 세번에 쓸려가듯이. 그녀는 H를 놓아주었고, 다른 것은 몰라도 함께 그런 일이 있었음은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어린 마음에, 그 누구보다 의지가 되었음을 기억해주자고 했다고 한다. 그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아직도 H의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비록 이제는 조금 덜 강박적이고, 조금 덜 조급하지만, 여전히 위기가 닥쳤을 때 본인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책임질 힘과 능력을 갖추기 위한 H의 뒤틀린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방향성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 잘 되지 않지만, 그가 일관되게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참 괜찮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