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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Dec 07. 2019

남산의 부장들

의자뺏기 놀이, 참 나쁜 놀이였다. 

나는 남산 근처만 가면 속이 뒤집혀-

김팀장이 이야기했다. 

푸르던 가을의 어느날, 나는 김팀장과 함께 남산에 있었다. 


남산의 가을, 점심 먹고 걸으면 그렇게 좋다던 산책길 

그 산책길도 무색하게, 김팀장은 잿빛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옆에 탄 나는 차창에 비친 내 얼굴 역시 그리 밝지 않았으라. 

우리 둘은 그렇게 택시에 앉아있었다. 


회사는 구조조정설을 언론에 흘리고 있었다. 

실적은 전년대비 성장했지만, 경영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주, 김팀장이 나를 호출했다. 

내년도 경영전략 문서를 가지고, 회사옆 오피스텔로 오라고 했다. 

텔레그램으로. 전략팀에 온 뒤, 나는 늘 텔레그램을 썼다. 

해킹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팀장은 나에게 텔레그램을 이야기하고는 했다.


오피스텔? 

처음에 나는 회사가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팀장은 나만 오라고 했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고.

문서 대량 출력과 제본을 할때 들리던, 회사옆 킨코스.

그 오피스텔로 나는 김팀장이 알려준 호수의 벨을 눌렀다.


컨설턴트 분들이라는 사람들을 팀장은 나에게 소개했다.  

그 날부터 나는 수시로 오피스텔로 갔다.

회사의 경영현황을 설명했고, 질문을 받았다.

자료를 요청하면, 정리해서 전달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를 해달라고 했다. 


벨을 누르고, 들어갔다. 

때로는 김팀장은 나에게 나가있으라고 했다.

명단을 만들었다, 지웠다, 그리고 다시 채워넣었던 흔적이 칠판에 남아있었다.

조직도를 그렸다, 지웠다. 그리고 다시 그렸던 흔적이 칠판에 남아있었다. 

3일째 되던 날, 김팀장이 홀로 야근하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그들이 컨설턴트가 아니라, 새로 오실 대표와 부사장이라고. 


속을 모르는 직원들은 인사발령이 언제나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다음주에 난다. 내년 1월에 난다. 설왕설래들을 했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꽤 신빙성 있게 들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카톡으로 돌리고는 나에게 전했다.


전략팀에 근무해보니,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일부러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보안을 유지해야하는 것은 철저했다.

감당해야 될 무게가 큰 이야기라, 함부로 꺼낼 생각조차 못하는 것들이었다.


김팀장과 나는 그래서 남산에 갔다.

계열사지만, 남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원증을 등록해야 했다.

너무도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 고요함이 나는 무서웠다.

남산에 들어서자, 사담당 신과장이 나와서 반겼다. 

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했다.


전략팀장과 인사팀장이 앞열에 앉고, 실무는 뒤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지주사 전략실장의 주재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김팀장의 말처럼 속뒤집히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룹 전체 내부인력의 20~30%를 축소, 내부 공채도 최소화. 

하지만, 제일 핵심은 늘 맨 뒷부분이었다. 인력 조정은 전계열사가 동일하니, 지주사도 예외가 없다. 

지주사 파견 인력의 계열사 복귀를 협조해주십시요.

결론은 지주에서 사람들을 보낼테니 조직과 자리를 만들어라였다.

그래서 우리가 간거였다.


옆에 앉아있던 인사팀 최과장의 얼굴이 창백했다. 

앞서 계열사별 부진인력 조정의 성과가 낮다며 계속 압력을 받아왔던 담당자가 그였다. 

지주의 인력들을 받아야 한다면 더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더 내보내야 하는 일을 그가 해야했다.

오피스텔에서 나왔던 명단의 이름들이 떠올랐다. 

지웠다. 쓰였다 하던 이름들.


쉬는 시간, 카페테리아에 앉아 인사팀 최과장과 함께 단풍이 수북해진 남산을 바라보았다.

여기도 지금 난리에요. 계열사별로 데려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별로 안되고, 나머지들은 자리 알아보고 다니느라고- 최과장이 말했다. 

그래도 70%는 남는다는 거내요. 남산 단풍도 즐기고-내가 예기했다.

그래도 남는 사람들이 있죠-최과장이 이야기했다.

이팀장이 우리를 보고 내년 다이어리와 달력이라며 샘플을 들고왔다.

신학기를 기다리는 신난 아이같았다. 


남산을 바라보며, 나는 예전 소풍 가서 했던 의자뺏기 게임이 떠올랐다.

학교종이 땡땡땡 노래를 부르다가, 선생님이 호루라기가 불면, 의자를 뺏어 앉는 게임이었다. 

항상 아이들에 비해 의자는 부족했다.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민첩해거나, 몸집도 커야했다.  

의자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떠났다. 

의자를 잡았지만, 힘센 아이에게 튕겨져 바닦에 엉덩방아를 찢은 아이들도 떠났다.

나는 늘 초반에 떨어졌다. 느렸고, 튕겨졌다.

돌이켜 보면 참 나쁜 놀이였다.

민첩하거나, 힘이 세어야 이길 수 있는 놀이.


나는 몰랐다. 

그 놀이를 어른이 되어서도 할줄은.

남산의 부장들. 2020년 1월, 개봉하는 영화제목이다. 

현실판 남산의 부장들, 2020년 1월.

타이밍 참 기가막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티저 포스터 (출처-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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