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주위에 조용히 사람들이 모일뿐.
운이 좋게도 해외법인에서 본사로 들어와 작은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해외지원하는 부서인 탓에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고, 팀원을 선별해서 뽑았다. 캐니다 교포 R, 중국인 K 그리고, 러시아인 A가 팀원이 되었다. 사내에 흩어져 있던 외국인들이 모이자, 겉보기부터 특별한 팀이 되었다. 대학교 영어프리존 같은, 글로벌센터 같은 곳, 문열기는 쉽지 않지만 호기심에 계속 지나가며 보게되는 그런 곳말이다.
좌충우돌을 겪으며, 팀이 안정화될 때쯤, 나는 우연히 특이한 점을 목격하게 되는데, 캐나다 교포 R이었다. 그가 유독 회사에서 인기가 높다는 점이었다. 다른 외국인 직원들도 있는데도, 유독 R 주변에 가벼운 인사 또는 아는척을 하러 들리는 직원들이 많았다. 회의를 갔다오면 늘상 다른 부서직원들 3-4명에게 둘러쌓여 대화를 하고 있는 R을 봤다. R, 겉보기에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직원이었다. 키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172cm 정도, 안경을 낀 모범생 타입의 외모, 모든 것에 평균을 지향하는 싱글인 직원이었다. 토론토에서 대학을 나온 교포라는게 조금 특이한 점인 정도.
R은 빠른 시간안에 본사에서 소위 인싸가 되었다. R이 근무하는 팀, 이게 우리팀의 별칭이 되었다. 호기심을 빙자한 조금의 질투심이 발동했다. 항상 어디에서든 아싸에 가까웠던 나, 인싸가 되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하던 나에게는 R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인기있게 만드는가가. 모여있는 직원들을 보며 질투심을 났다. 티내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었지만, 주위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 R을 나는 질투했다. 내 책상을 지나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는 R의 자리. 과연 뭘까? 무엇일까? 꿀벌과 나비를 끌어들이는 꽃처럼, 꿀을 머금은 꽃처럼 모두를 끌어드리는 R의 비밀을, 늘 초콜릿과 과자가 올려진 그의 책상, 먼지가 쌓여가는 내 책상에서 어떻게든 R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내서 나도 그 인싸라는 것이 되고 싶었다.
R의 특징 하나, 튀지 않았지만,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내가 본 R은 인싸가 되려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는 튀지 않았고 언제나 그저 자연스러울 뿐이었다. 그는 튀는 옷도 입지 않았고, 화려한 신발도 신지 않았다. 손목, 간혹 뒷목에 보일 수 있는 작은 문신도 그와는 맞지 않았다. 인싸가 되기위한 소위 어떤 친목질도 없었다. R은 동호회 활동도 전혀하지 않았다. R은 어찌보면 회사와 집, 집과 회사를 오가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R은 특징 둘, 마당발이 아니었지만, 소수에게 집중했다.
R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숫자로 보면 많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특정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거였다. 입사동기, 또래 직원들, 전 팀의 팀원들, 그들이 매번 R을 찾아왔다. 그는 그들에게 살갑게 참 잘했다. 점심을 같이 먹는 것 외에도 퇴근 후, 술을 늦게까지 같이 마시기도 했다. 때론 끊었던 담배도 피웠다고 했다. 그의 친구들이 또다른 친구를 소개시켜주며 그 소수의 인원이 조금씩 늘어났다.
R의 특징 셋, 여러가지가 아닌, 한가지의 뛰어난 스킬을 갖추었다.
그 스킬은 영어, 캐나다 교포인 R에게는 모국어인 영어가 있었다. 그것이 그를 찾는 사람들의 동기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친절하게 그들을 도았다. 메일을 영어로 보내거나, 계약서의 해석이 필요할 때, 그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그들을 도았다. 자신의 업무를 끝내고, 그들을 도왔고, 때로는 내게 양해를 구하며, 휴일에 나오기도 했다. 영어로 도움을 받은 동료들은 그를 다른 동료에게 소개했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R의 특징 넷, 늘 과묵했지만, 때론 평균이상의 리액션을 했다.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던 R은 그렇다고 핫한 소문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내에 돌아다니는 풍문을 그에게 물어보면 그는 언제나 알듯 모르는 듯, 의뭉스런 표정을 지으며 넘어가기 일쑤였다. 친구들이 그를 편안해 하는 건, 그의 이런 벽과 같은 무거운 입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와 대화를 하면 캐나다인 답게 평균이상의 리액셤을 선보이며 말하는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다.
R의 특징 다섯, 예의발랐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두었다.
내가 지켜본 R은 누구에게나 예의가 발랐다. 기본적으로 친근했지만, 누구에게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친구였다. 서양인이라는 사회적인 거리탓일까? R은 예의를 차리면서 쉽게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넘어가게 하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를 친하다고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소수의 친한 동료들외에는 모두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그렇다고 아무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R에 대한 정리를 하다보니, 떠오르는 한권의 책이 있었다. 애덤 그랜트의 책 '기브앤테이크'였다. 책에서 나오는 세가지 개념, 기버(Giver), 테이커(Taker), 매처(Matcher)는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버(Giver)는 상호관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고 주는 사람
테이커(Taker)는 상호관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인 사람
매처(Matcher) 내가 준 만큼 받으려는 사람
내가 보기에는 R은 남을 돕는 기버였다. 성실하게 남을 돕는 기버, 하지만, 책 '기브앤테이크'에서 평가하는 기버는 극단적이다. 조직내 단순히 착한 사람으로, 소위 호구로 찍혀 조직의 밑바닥을 전전하거나 아니면 전략적으로 남을 도움으로써 조직 최상위에 오르는 사람이 될 수 도 있다.
성공한 기버는 단순히 동료보다 더 이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기브앤테이크, 259 페이지)
R 도움을 주면 결국 받는다는 것, 하지만, 무작정 도움을 줘서 내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이 아닌, 소수의 나의 사람들에게로 도움을 집중하면, 그 도움이 나에게 또 다른 기회로 찾아온다는 것을 체득한 기브앤테이크(Give&Take)원리를 이미 체득한 직원이었다. 캐나다에서 두살 위의 형과 함께 살면서,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4년 장학생으로 학업을 마친, 그는 그것을 이른 나이부터 체득했던 것이다.
요즘들어 심해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이기심이 판을 치는 회사에서, 비즈니스라는 질서로 포장되었지만, 실상 정치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세상 속에서, 남을 도와주는 기버였다. 힘들다고 얘기하는 직원의 하소연을 이리저리 흘리고 나서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협잡이 판을 치는 사무실에서 흔치 않은 기버.
갑자기 내가 부끄러워졌다. 조직내 인싸가 한번 되겠다고 속보이는 웃음, 가득찬 술잔을 기울였던 나, 나의 이익이 언제나 중심이었던 테이커였던 나였다. 남의 불행이 곧 나에게 기회는 아닐까? 뒤에서 계산기를 먼저 두드렸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진심이 아닌걸 내가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게 안보일 수 없다. 테이커는 그래서, 기브앤테이크에 의하면, 조직의 중상위까지 밖에는 올라가지 못했다. R, R의 비밀은 내게는 곧 성공의 힌트와도 같았다. 지금 손해보는 것 같지만 남에게 도움을 주자. 대신 내 이익을 항상 고려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