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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려고 회사출입카드를 찍었다.

회사에 다니며 나는 퇴화했다.

by 데인드박

"엄마, 나 바빠! 빨리!"

점심시간에 걸려온 어김없는 전화벨, 이번에도 통화거절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결국 나는 통화를 눌렀다. 엄마의 안부전화, 짜증이 났다.

"알았어, 끊어 빨리!"

그 날 갑자기 예정된 상무님과의 팀점, 팀장이 지시한 식당예약부터,메뉴선정, 참석인원 체크를 바로 진행해야 했다. 전화가 온 그때,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급하게 뛰어내려 식당에 가고 있었다. 엄마는 절에서 갔다 내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날의 점심식사 미션은 완수되었다. 뭘먹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점심, 상무는 얘기했고, 우리는 들었다. 팀장의 눈빛에 각자 적절한 맞장구를 쳤다. 팀장은 우리에게 회사의 모든 것은 미션 또는 작전이라고 말했다. 작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처럼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점심 후, 디저트 커피타임까지 우리는 병정이 되었다. 누구나 하는 회사생활이니까, 적응했다. 그리고 무뎌졌다. 아닌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반조직성향으로 분류되고, 바보가 되는 회사생활.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우리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상사와의 점심, 조직소통차원이 아니라 여전한 불통을 확인했다. 흐믓한 미소를 짓는 상무의 뒷모습과 그를 따르는 팀장, 뒤따르는 나는 소화가 되지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을 타려고 회사출입카드를 찍었다. 멋적은 나를 뒤로하고, 2-3명이 내 어깨를 치며 빠른 걸음으로 개찰구를 지나 뛰어갔다. 직행이 오는 시간, 아차-나도 허둥지둥 지갑을 찾아 그들을 따라 뛰었다. 계단을 뛰어내렸다. 일반역을 건너뛰는 조금 빠른 직행을 타기위해 모든 사람들이 계단을 뛰었내렸다. 뒤돌아보지 않고 나도 뛰었다. 출입문이 닫히기 전, 겨우 두발을 디딜 작은 공간에 몸을 싣고 문이 닫혔다. 터질것 같은 지하철 객실안에서 나는 떠났다.

"니가 그렇게 잘났냐? 맞추고 좀 살아!"

책상에 툭 던져진 기획안, 팀장은 내 기획안이 수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퇴근해버렸다. 두발을 딛고 선 지하철에서 유리창에 비친 나를 보았다.역을 지날때 마다 객실이 흔들리고, 나는 더 발을 모았다. 더 줄어들 수 없는 상태다. 더 맞출수는 없는 상태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렸다. 지하철 역 벤치에 앉아 직행을 보내고, 그렇게 다음 열차를 탔다.


"이제 내 아들같네"

퇴사한 뒤, 엄마가 내게 얘기했다. 입사 후, 늘 쫓기며 살았던 나, 늘 직행열차를 타기 위해 뛰던 나였다. 주변을 돌아볼 수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퇴화했다.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아들이되었다. 회사에서 따뜻하면 이용당하기 쉬었다. 친절하면 뒷통수를 쳤다. 사람에 상처를 입고, 분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본척, 안들은척, 내 일만 잘하자'라고 마음을 문을 걸어잠갔다. 외로웠다.

퇴사를 결정했다. 항상 재생속도가 1.5배 속 빠르게 지나가던 나의 세상은 그렇게 1.0 속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런닝머신을 뛰는 것 같던 나는 이제 멈춤을 누른 것이다. 직행 열차에서 내린 것 그날처럼, 잠깐의 현기증을 느꼈지만 이내 안정감을 느꼈다.

퇴사 후, 처음 한 일은 엄마가 가고 싶다던 스타벅스에 같이 같이 간 것이다. 엄마는 소녀같이 좋아했다. 커피를 좋아한 엄마는 늘 나와 함께 스타벅스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거리에 그렇게 많은 스타벅스를 난 늘 지나친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사진을 찍는 줄 몰랐던 엄마에게 차근차근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이제 산에 가면 꽃도 찍을수 있다고 좋아했다.

스마톤을 개통한 뒤, 엄마는 종종 산에 가서 내게 사진을 보냈다. 꽃사진, 들에 난 풀, 절에 걸린 등, 갈수록 사진은 다양해졌다. 그리고, 엄마는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웠다.

"아들아, 스타벅스가자"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갔다. 1호선 지하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한강을 지나 집으로 갔다. 엄마와 집에서 밥을 먹었다. 천천히, 내 속도로 씹고, 맛을 음미했다. 엄마와 집앞의 스타벅스로 갔다. 엄마는 늘 앉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노트북을 켰고, 엄마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절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어느 오후의 풍경.

"고맙다. 오늘 하루."

엄마의 문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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