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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May 08. 2020

새벽 2시의 콜링

집에 가는 길

밤길을 걸었다. 술을 깨려 조금 먼 곳에 택시를 세우고 걷는 중이었다. 내리자마자 후회가 들었다. 차 안에선 몰랐는데 공기가 습해져 있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았고 봄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여름이 훅 다가온 듯싶었다. 후덥지근한 기운에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괜한 짓 했네.
꿉꿉한 포켓 속에 손을 넣은 채 길을 서둘렀다. 드문드문 지나는 차량과 홀로 불을 밝히고 선 감자탕집 간판을 보며 걷는 사이 손가락 끝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 시간에?
함께 있던 일행인 줄 알았는데 다른 지인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는 조금 당황했고 조금 궁금한 하기도 했다. 이렇게 불쑥 연락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오타가 없는 걸 보면 거나하게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새벽의 연락은 대개 두 가지. 취했거나 누군가가 절실하거나……. 찜찜했지만 연락을 받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집에 가는 중이라는 답문을 보냈고 곧이어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후배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아주 친한 사이도, 데면데면한 사이도 아닌 탓에 대화는 빙빙 돌았다. 질색하는 하나마나한 소리들. 그런 불편함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사이. 그럼에도 새벽녘 날 찾은 후배의 기분에 조심스러운 나.   
그의 목소리는 젖은 낙엽처럼 눅눅했고 구둣발로 바닥을 직직 끄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건물 외벽에 기대어 앉아 통화하고 있는 듯 했다. 얼추 취했음에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건지 간간히 발음이 샜고 그렇게 뜸을 들이던 녀석은 지나가듯 말을 던졌다. 지난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자기도 장례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됐다고 했다. 가족 간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몇 년 째 왕래 없이 지냈다는 것 또한.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복잡해진 가족관계 탓이었을까? 간극을 매울 수 없는 부자간의 성격 탓이었을까. 그 둘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나 보다. 전화를 끊기 전 후배는 이 말을 남겼다.   
누군가한테는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모르겠는데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아마……. 하고 싶었나 봐.
나는 아이스크림 봉지가 굴러다니는 벤치에 앉아 잠시 하늘을 올려봤다. 방금 전보다 더 흐려진 것 같았다.


“거기도 비 오려고 하냐?”
“비? 아니.”
“여긴 곧 올 거 같아. 얼른 들어가. 아, 그리고 이번 주 독서 모임 나올 거지? 경주 선배도 온다더라.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   
해줄 말도 없었고 딱히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후배는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말했고 나는 그것을 들었다. 피곤해선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인의 불행한 소식에도 덤덤한 내 자신이 이물스럽다가도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는 습기에 짜증이 밀려왔다.
왜 내게 연락 했을까? 언젠가 어린 시절을 그린 내 습작 소설을 읽었던 탓일까? 후배의 목소리로 전해지던 아버지란 단어를 오랜만에 곱씹었다. 불러본 지 20년도 넘어 이제는 생경한 단어지만 혀를 굴리자마자 금세 그 생생함이 전해졌다.  


조문객들 틈에서 육개장을 먹고 있던 고등학생인 내 눈에도 그는 한심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는 징그러울 만큼 무능력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고모는 육개장에 깍두기 국물을 부어 먹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진미채를 크게 집어 그릇에 올려놓는데 뚱한 표정의 고모가 말했다.

먹을 만해?

나는 고모를 외면한 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십 년만의 지독한 폭설이었다. 설 연휴 전이라 장례식장은 썰렁했고 어디서 맞춰왔는지 두 치수는 큰 헐렁한 상주복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 자꾸만 옷깃을 여며야 했다.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가 두 개밖에 안 되는 국화꽃 화환을 바라보며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시신을 염하기 전 불려간 나와 형은 어두침침한 공간 속에 죽은 아버지의 육체와 마주했다. 오랜 투병 생활 탓인지 남겨진 그의 육체는 헛껍데기 불과했다. 40킬로가 될까 말까한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린 몸. 늘 술에 취해 있었던 눈은 죽을 때도 역시 생기를 잃은 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신을 증오하는 막내아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내가 그의 눈동자와 마주친 걸 알게 된 사람이 급하게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기계체조를 했던 그였지만 근육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나를 향해 내리친 각목을 들고 있던 팔뚝의 굵은 힘줄도 겨울나무처럼 바짝 말라 차가운 스테인리스 받침대에 차분히 내려져 있었다. 염을 하던 먼 친척뻘 아저씨는 입속에 뭔가를 넣어준 다음 마지막으로 손을 한 번 잡아드리라고 했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형은 한참이나 흐느끼며 그의 마지막 손을 잡아 주었다. 아저씨가 내게도 눈짓했지만 형을 부축하는 척 밖으로 나와서는 먼지 쌓인 복도를 힘껏 달렸다. 창밖 세상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시간에 맞춰 화장터로 이동했고 곧 시신을 담은 관이 고온의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재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유골함을 받아든 우리는 그것을 대전 근방의 금강변 어딘가에 뿌려주었다. 재를 뿌려주고 난 뒤 차가운 강물에 손을 씻었다. 나는 손등이 얼어터질 만큼 차가운 물에 깊숙이 손을 넣어 깨끗이 씻어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잿가루 역시 금세 흩어져갔다. 축축한 손으로 이마를 한 번 쓰다듬고는 물에 비친 풍경을 보며 말했다.
징그러운 인간.
멀찍이 있던 누나가 날 보며 말했다. 여기 3번 교각 밑이야. 알았지? 잘 기억해 놔.
그것이 그와 나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다.    

벤치를 드리운 나무 위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툭, 투두둑.
머리 위로도 잎사귀를 타고 흐른 빗방울이 떨어졌다. 여름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저 걸었다. 좀처럼 뛰고 싶지 않은 밤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구석진 곳에 누워 다음 날 해가 저물 때까지 자고 싶었다.
흠뻑 젖은 모습으로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사 집으로 향했다.
어쩐지. 밤새 걸어도 닿지 않을 듯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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