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으로 질주하는 열차를 세울 때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이 필요한 멈춤이었다. 당연히 열차 안의 유일한 승객인 나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크게 밀려났다. 뒤로 넘어져 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때 열차를 세운 기관사를 원망하진 않는다. 그 역시 다급하게 깜빡이는 신호등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니까.
그 순간 내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브런치에 올라온 나도 작가다 응모 글을 읽으며 그때를 떠올려본다. 어설프고 무모했던 그 시작에 대해…….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며 살아가다 보면 한 가지 목적에 매몰되어 살다 보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어렸을 적 자신의 모습일 수 있고 한 번쯤 읽었을 고전 속 주인공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일단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메시지가 너무나 명료하고 강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언제나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새로운 질문도 아닐뿐더러 오래 전 강물에 던져버린 질문일 수도 있다. 홍역은 죽어서라도 앓아야 한다고 했던가? 다만 반드시 대답해야만 하는 질문인지 모른다.
그날 밤, 맥베스가 숲에서 받았던 예언만큼 대단하지는 아니었을지라도 내 인생의 오라클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장차 위대한 작가가 될 것이다”와 같은 황홀한 예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예언은 이랬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게 이런 거야?”
추석 연휴를 앞둔 밤이었다. 마케팅 회의를 준비하려 홀로 남아 자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새벽 1시를 넘었을 무렵 두통이 밀려와 밖으로 나가 편의점을 향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보름을 앞두고 있어 달은 완전무결한 원을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좀 더 걷고 싶어 멀찍이 떨어진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낮에는 그리도 붐비던 공덕동이 꽤나 고요했다. 기분 좋게 맞바람을 헤치며 걷다 보니 나는 어느새 마포역을 지나 한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너무 멀리 왔나?’
한강으로 통하는 어둑한 터널을 지나자 물비린내가 훅하고 코끝을 스쳤다. 왠지 기분이 좋았고 나는 강을 따라 걸었다. 한참이나 걷는 동안 문득 오랜 전부터 이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 너머 여의도는 어둠에 잠긴 채 몇 몇 건물만이 LED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고 강가로 좀 더 다가서자 물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쪽이 바다로 흐르는 방향인가?’
바다를 떠올려서였을까. 정말 바다 내음이 맡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문득 다 완성하지 못한 PPT 생각이 내 뒤통수를 강하게 붙들었다. 금세 불안이 밀려와 돌아가는 길을 서둘렀다. 다시 어두운 터널에 도착해 저쪽으로 건너려는 순간 물살이 앞으로 뻗어나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한참을 서 있었고 10미터 너머의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멀어보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곧장 길의 끝에 서서 바다로 향하고 있는 물살을 내려 봤다. 강을 사이에 둔 오렌지 빛 가로등들은 줄지어 빛나고 있었다. 바다로 향하는 길을 낸 것만 같았다. 그 수많은 밤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길이었다.
추석 연휴 다음 날 사표를 제출했다. 팀장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동료들은 나의 다음 계획을 궁금해 했다. “다른 회사 가? 아니라고? 그럼 이제 뭐하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명할 자신이 없었거니와 이제는 되돌리려 해도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단한 작가가 되었는가? 아니다. 몇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문학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고 있을 뿐 여전히 유명세나 성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작을 후회하는가, 10년의 경력과 꽤나 고소득의 직장을 포기한 것을? 상실된 소속감에 방황했던 적도 소심해진 내 자신을 발견했던 적도 있지만 후회했던 적은 없다.
이제 끝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경력이나 성공 같은 게 있을 수 있을까? 내일도 모레도 그저 걸으려고 한다. 어차피 끝이라는 개념 따윈 없는 시작이었음을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