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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May 12. 2020

리버 피닉스's 허공에의 질주

running on empty

영화가 만들어진 건 88년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1999년 겨울 어느 무렵, 밀레니엄 버그 어쩌고 난리를 치던 때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독일어를 배우겠다고 자퇴한 뒤 외대에 입학해 이문동에 자리를 잡고는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있다. 그때 피자 한 판 먹으면서 같이 봤던 영화가 바로 이 허공에의 질주. 처음엔 뭐 저런 영화를 보자고 그러나 싶었다. 피자에 맥주를 마시면서 보기엔 왠지 다운되는 영화같았기에. 하지만 졸음이 쏟아질 듯한 독일 영화를 틀어주지 않는 게 어디냐며 우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열성 반전운동가로서 네이팜탄 제조 공장에 폭탄 테러를 한 댓가로 평생을 도망쳐 다녀야 했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들의 아들 대니(Danny Pope: 리버 피닉스).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한 채 6개월이 멀다하고 이사를 다닌 탓에 소개팅은 고사하고 친구를 사귈 기회 조차 없던 대니는 언제나 외로움 그리고 불안이라는 깡통을 차며 학교 집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우연한 기회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음악 선생님 눈에 든 피닉스는 선생님의 초대를 받고 정말로 그날 선생님을 찾아 간다. 그리고 만난다. 선생님의 딸 로나를.

둘은 친구가 되고 같이 해변을 산책하고 아무 뜻도 없는 얘기에 웃음을 터트리고 언젠가부터 밤이 되면 헤어지기 싫은 사이가 돼버리고 만다.

극 중 직접 피아노를 치는 리버 피닉스


전형적인 미녀 상은 아니지만 웃는 모습이 고 꽤 성숙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마샤 플림튼.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결국 그들은 사랑에 빠지지만  대니 부모님 인생에 정착은 없다. 다음 내용은 뻔한 스토리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결말을 적지는 않겠지만 사실 대단한 은유도 놀랄만한 반전도 없다. 그러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다.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가 함께 주연을 맡았던 영화 '아이다호' 만큼이나 오랜 여운을 남긴 영화기도 하다. 어째설까... 지긋지긋하게 이사를 다녔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한국어로 번역 된 영화 제목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허공에의 질주'

나의 80~90년대 장가계 유리 전망대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만큼이나 아찔했다.

저 멀리서부터 쩌럭쩌럭 갈라지기 시작한 금이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당도하지 못하도록 언제나 죽을 힘을 다해 뛰었던 것 같다. 단순히 가난 가까운 사람의 죽음 어두운 상처들 때문에 불안을 느꼈던 것 같지는 않고 그저 불행과 어둠이 내 삶에 내재된 본성인 듯 싶다고 어렴풋이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매일매일 골목골목을 쏘다니며 살았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어른이 돼 뭘 할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른이 되면 뭔가 단단한 땅을 밟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지금 나는, 그 아이에게 이제 이리로 건너 와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 내가 밟고 있는 이 세상은 흙과 자갈로 단단히 채워져있다고



어쩌면 지금도 허공 위를 달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의 두려움은 없다.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 할 만큼 그때의 순진함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고, 현재 나와 함께 이 시간 위를 걷고 있는 동시대 사람들의 안녕을 빈다.


p.s.: 이 영화를 나만큼이나 좋아했던 그래서 라디오 프로에서 자주 OST를 들려주었던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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