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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뚜두 May 12. 2020

치유의 도시 아시시(Assisi)

산타 키아라 성당을 추억하며...

몇 년 전 이태리 일주를 한 적이 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남부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등 많은 장소가 기억에 남지만 그래도 딱 한 곳을 선택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아시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이태리 일주를 하기 전까지 아시시란 곳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랬던 까닭에 여행을 함께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아시시' 어떠냐는 말을 처음 들었을  거부감을 보였다. 너무 막연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속마음은 시간도, 돈도 아깝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시골 촌구석에서 나흘 씩이나?  

구글링을 통해 알아낸 정보로는 일단 반나절면 족한 작은 도시였고 프란치스코 성당을 제외하면 딱히 랜드 마크도 없는 듯 했다.

아시시 대표 성당 중 하나인 '산타 키아라 성당' 앞 광장

친구는 고즈넉한 수도원에서 하루쯤 묵을 수 있고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곳만 찍고 가는 사람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간직된 곳이라고 말하며 날 설득하려 했다. 그러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시시 전경이 드러난 풍경 사진이었다. 따스한 크림색 & 베이지색 벽돌로 지어진 도시, 정감가는 구불구불한 길과 맑은 하늘, 느리게 걷고 있는 듯한 사람들, 쭉 뻗어 나간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움부리아의 드넓은 평원  

로마에서 무궁화호 수준의 기차를 잡아타고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아시시의 첫 풍경을 마주한 나의 첫 마디는 '다행이다!' 였다. 하마터면 오지 못했을 뻔 했구나... 싶어서


우리는 손바닥 만한 도시를 돌고 또 돌며 아시시 구석구석의 인상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마음 속에 그리고 사진 속에 담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자주 들락날락했던 곳은 단연 산타 키이라 성당 앞 광장일 것이다. 나는 분수 앞에 앉아 관광객들이(대개는 반나절 코스) 성당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했는데 심심할 때면 분수대에 손을 넣고 미지근하게 데펴진 물결을 느끼며 아래로 보이는 움브리아의 너른 평원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가 주워삼켰던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앞도 뒤도 맥락도 없던 말들.  

'잘할 수 있을까?', '연락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이제 그만 정리를 하는 게 나은지...', '언제 기회가 되면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할까?' 와 같은 시공을 넘어 내게 찾아왔던 말들.           

마음이 심란해지면 분수에 넣은 손을 흐느적거리며 셀카를 찍느라 정신 없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곤 했는데 그러다가도 언제나 내 시선의 끝은 길게 늘어선 줄(키아라 성당 입장을 위한 대기줄)로 향하고는 했다.


아시시에 오는 사람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 프렌치스코 성당에 들러 기념품을 사고 산타 키아라 성당에서 키아라 성녀의 미라를(성녀의 미라를 알현하면 장수 할 수 있다는 말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주하는 것. 나는 그것을 미신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지만 키아라 성녀의 미라를 보기 위해 긴 줄서지는 않았다.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앙이 없는 내게 육체가 썪지 않았다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 뿐더러 더불어 진정 살아있다는 것이 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으니까.   

         (해가 기울 무렵의 로카 마조레 요새 풍경)


나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한 편 완성해 (주제는 존엄사)  '산타 키아라 광장에서 추는 춤'이라는 제목으로 2018년 계간 문학나무 여름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금도 종종 그립고 생각이 난다. 손가락 사이로 스미던 분수대의 따스한 물결도, 옅게 흩어져 가는 노을을 받아 빛나던 로카 마조레 요새의 석양 빛도...

밑에서 올려다 본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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