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기름칠이 필요한 순간
매거진 <컨텐츠를 처방해드립니다>는 매주 특정한 상황과 감정에 적절한 컨텐츠를 추천합니다. 우울할 때 더 우울한 음악을 추천해주거나, 딴생각 안들게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 대본집을 권하는 식으로요. 어떤 걸 추천하든, 힘들어 죽겠는데 억지로 힘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성인이 된 후로는 약간의 요령도 생겼지만, 새로운 만남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대화하다가 정적이라도 흐르면 다 내 탓인 것만 같고 그래서 아무말대잔치를 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말걸...' 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부담스럽게도 이번주는 유독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많았다.
어떤 주제로 말할지,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거나, 업무상 잘 보여야 하는 사람, 혹은 그냥 궁금한 사람.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해야 했다. 그래서 검색창을 열고 아주 오랜만에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입력했다. 이 나이 먹고 이걸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이 좀 웃겼지만 모르면 배워야지 별 수 있나. 나이를 핑계 삼아 배움을 멈추는 순간부터 꼰대화가 진행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아니 윤기 나는 대화를 위해, 아니 적어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를 위해 구글/YouTube/브런치/미디엄을 들락거렸다.
그랬더니...
이건 좀 아닌데 싶었다... 어린 시절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을 물어보라니. 대기업 임원면접도 아니고.. 갑자기? 이렇게 찾은 건 대부분 오글거리거나 뻔하거나. 두가지 중 하나였다. 그래도 유용한 질문들을 몇 개 건지긴 했다. 그중 뻔하지 않고 실제로 써먹기 좋았던 건,
최근에 산 아이템 중에 마음에 들었던 거 있어요?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최근 관심사나 취향, 소비패턴 등을 동시에 알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질문의 가장 큰 미덕은, 아이스브레이킹 이후에도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게 만드는 스타터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물건에 돈 썼던 순간을 떠올리는데 분위기가 나빠질 리 없다. 슬며시 미소를 띠며 자신의 이야기를 오픈하는 걸, 나는 또렷이 목격했다.
대화는 즐겁게 계속됐다. 업무상 만난 사람과도 우연히 공통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지금부터 소개할 콘텐츠들을 보고 갔으면 좀 더 윤기 나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약간 아쉬웠다. 아래 목록은 구글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방법들이다.
세상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고,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 자신이 어느 기숙사에 들어갈지 상상해본다. 그리핀도르, 슬리데린, 후풀푸프, 레번클로에 한 번씩 나를 대입해보는 거다. 물론 어릴땐 주인공빨로 대부분 그리핀도르에 가고 싶어했지만.. 이제는 안다. 각자의 기숙사를 찾는 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인지의 문제라는 걸.
해리포터 시리즈는 특히 창작자들 사이에서 캐릭터 빌딩이 훌륭한 교과서적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람을 어떻게 4가지 유형으로 나누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조차도 흥미를 가지고 자신의 소속을 정하는 건 물론이고 일종의 프라이드까지 느끼게 만든다. 이런 교과서적 지위를 증명하듯, 각종 캐릭터를 해리포터 기숙사에 배정하는 영상까지 등장했다. <Fandom Characters in Hogwarts Houses> 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기숙사별 키워드 참조.
그리핀도르(초록) = 용기, 정의
슬리데린(빨강) = 야망, 현실적인
후플푸프(노랑) = 동식물, 우정
레번클로(파랑) = 지성, 상상력, 위트
이 영상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이 대체로 하나의 기숙사에 몰려있는 걸 확인하게 된다. 당신의 최애캐는 무엇인가. 참고로 캡틴 아메리카는 후플푸프, 셜록은 레번클로, 베이비 그루는 그리핀도르다. 상대방이 해리포터 기숙사를 잘 모른다면 어벤저스나 디즈니 캐릭터를 골라보게끔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에 공감/몰입/이입한다는 컨셉만 이해하고 있으면 어벤저스, SES, 방탄소년단으로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상대의 관심이나 그때 유행하는 컨텐츠를 가져와 이야기하면 된다는 거다(애초에 영화 한 편에 등장하는 캐릭터 수가 많아지고 아이돌 그룹 멤버가 많아지는 추세 자체가 다양한 사람들이 그중에 최소한 한 명은 좋아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도 설마 좋아하는 캐릭터가 한명쯤은 있겠지).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에 몰입한다
상대가 공감하고 이입하는 대상을 통해 캐릭터를 파악하고 나면, 대화가 좀 더 쉬워진다. 예를 들어 나같은 레번클로 유형에게는 새로 출시된 디지털 기기나, 신기한 어플, 전혀 모르던 분야에 대한 지식 같은 걸 던져주면 눈을 반짝거리며 폰을 꺼내 검색해놓고 저장까지 한다. 단, 셜록이나 문제적 남자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TMI를 온몸으로 받아낼 준비를 하자.
친목도모 자리에서는 익숙한 소재를 끌어와 게임하듯 캐릭터파악을 해보는 방식이 유효하지만, 공적인 목적이 섞인 경우는 좀 다르다. 갑과 을의 관계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눈에 유능해 보이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하니까. 구직면접에서 시작도 전에 기세에 눌려버리면 결과는 뻔하지 않던가. 적어도 하려던 말의 70%는 하고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세'라는 녀석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2017년 미디어에서 청년의 심리를 다룰 때 가장 많이 팔았던 키워드가 '자존감'이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구분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최근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까지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자존감이 중요하고, 가지기 어려우면서, 그동안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7251142
이 자존감이라는 녀석은 나에게도 오랫동안 화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딘가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만 보이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페이스북에서 한창 바이럴 되었던 스윙스의 근자감 뽐뿌 영상도 그런 상황에서 보게 되었다. 대단한 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김빠지게도 영상의 요지는 "자신감에 왜 이유가 필요하냐"였다. 나를 믿는데 왜 근거가 필요하냐고. 나에겐 전혀 와닿지 않았다. 내용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저렇게 타고났구나" 정도. 세상만사에 일일이 이유를 묻고 답을 찾는 즐거움으로 사는 나의 자존감은 높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이크임팩트의 영상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밑줄치고 싶은 문장을 많이도 발견했다. 시작은 이렇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의 하나가, 자존심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점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뭐지. 처음부터 생각을 뒤집어놓는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좋아하는 몇 가지보다 싫어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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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의 부족한 부분을 미워하거나 창피해하지는 않아요."
사람이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고,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누구나 가진 단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쳐나가면 절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도, 자신감은 있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말들을 듣고 자존감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을 느낄 때 자존감까지 떨어질 이유는 없겠구나. 처음 받아들이게 된 관점이다. 앞으로도 자존감이 떨어질 때마다 이 영상을 많이 돌려보게 될 것 같다.
자존감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설득되지 않았던 경험을 돌아보면 맥이 풀릴 정도로 쉽게 납득해버렸다.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설명해줄 사람을 찾는 게 이만큼이나 중요할 줄은 몰랐다.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만
자존감이 생기는 건 아니에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이렇게 멀리 돌아왔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업무능력을 어필하는 자리라면, 자신감 장착은 필수다. 어떤 사람이나 회사도 완벽하지 않다. '이런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서서히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