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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Mar 14. 2018

소화불량에 필요한 컨텐츠

배출해야 한다. 음식이든, 감정이든

<컨텐츠를 처방해드립니다>는 일주일을 보내며 느낀 감정에 공감해 줄 누군가(혹은 무언가)를 찾아다닌 기록입니다. 책장 속 한번도 꺼내지 않은 책처럼, 감정에도 건드려지지 않은 조각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저와 비슷한 외로움을 느낀 익명의 누군가를 위로해주겠다며 쓰기 시작했지만, 역시 저는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인간입니다. 기를 쓰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0. 소화불량의 원인


소화불량의 원인은 2가지다. 이상한 걸 먹었거나, 뭘 먹어도 소화를 할 수 없는 상태거나.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은 대개 후자고 설사는 전자가 많다. 한편, 뭔가 배설되기는 하는데 구린내가 난다면 안타깝게도 2가지 모두 문제가 생긴 상태다. 그게 음식이든 감정이든 제대로 분출되지 않으면 속이 썩어들어간다.


카타르시스 = 배설, 정화


문제는, 뭘 잘못 먹었는지도 알겠고 왜 소화가 안 되는지도 아는데 이걸 해결할 열쇠가 나한테 있지 않다는 거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이나, 연락이 없는 회사. 모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고 기약이 있는 괴로움이긴 하다. 어쩌랴, 지금 당장 힘든데.


격동의 시기다. 20대가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이런 생각은 10대 때 지겹도록 해서 이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처음 겪는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막연하고 조급하고 답답하다. 그래서 이번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읊조리는 컨텐츠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와는 다른 풍경을 보는 사람도 눈앞이 아득한 마음은 비슷했다.



1. 땅만 보고 다니는 친구와의 대화, 고등래퍼 2


힙합 가수 몇몇을 좋아하긴 해도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은 낮아서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를 챙겨보지 않았다. 하물며 <고등래퍼>는.. 타이틀만 봐도 '치기+허세+실력부족' 콤보가 무지개 케이크 마냥 총천연색으로 쌓여있을 것 같았다.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던 중에, 추천 타율이 높은 지인에게서 "생각과는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꽤 자기 이야기를 잘하더라면서.


그래서 편견없이 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고등학생 시기에 가장 할말이 많았다. 지금도 악몽을 꾸면 8할은 학교다. 쏟아내지 못한 그 시기의 감정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귀신도, 군대도 시간이 지나면서 등장 빈도가 줄었지만 학교만은 여전하다. 그 끈질긴 억압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고등학생이 얼마나 될까. 자기표현 창구는 권위주의로 막혀있고, 진로희망조사서에 적을 건 불확실한 판타지 아님 강요받은 현실밖에 없었는데.


풀어낼 곳이 없던 사람의 자기표현은 밀도가 남다르다. 평소에 땅만 보고 다니는 친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가지고 있다. 앞머리로 눈을 가린 채 말이 없던 병재(빈첸)는 독보적인 스타일과 남다른 실력으로 사람들을 놀래켰지만, 두 번째 싸이퍼가 끝난 다음엔 박수 대신 눈물을 이끌어냈다.


그대들의 돈은 노력인가요 집안인가요
그걸 떠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


https://soundcloud.com/kiff_vincentius/10a


진심일수록 더 정성들여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의미있는 주제를 골랐다고 해서, 절박하다고 해서 받아들이는 쪽의 상황이나 감정은 덜 중요하다는 듯 자신의 의도만 주장하는 건 별로다. 그런데 이상하게 세련된 스킬이나 전략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감정전달이 압도적인 경우가 있다.


3화에서 보여준 병재의 곡이 그랬다. 천재라고 불리는 하온의 컬러는 분명 이채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1)자신의 감정 2)그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그리고 3)듣는 사람이 느낀 감정 사이의 간극이 가장 좁은 건 병재다. 혼자만 화나 있거나, 밑도끝도 없는 자기자랑이 지겨워 한국힙합 안 듣는다는 사람에게도 주저없이 추천한다.



2. 이대로 쭉 안 괜찮으면 어떡해요, 혼자를 기르는 법


직장인이 되고 선택의 범위가 조금씩 커지면서, 10대 때 느꼈던 스트레스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서투르다. 선택권은 있지만 안정감과 성취감은 저기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빨리 30대가 되고 싶지만 막상 당사자들을 보면 그렇게 심리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답은 없고, 풍요롭지도 않은데 특히 결혼을 염두에 둔 경우는 더 막막해하고 있다.


선택권은 있지만 안정감과 성취감은
저기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 기대하고 있다.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오르고 경험이 쌓이면 마음도 잔잔해지겠지. 어쨌거나 20대보다 30대가 낫겠지. 경제성장은 더뎌도 내 커리어는 성장하겠지.


김정연, <혼자를 기르는 법>


<혼자를 기르는 법>은 개성있는 작품이 많은 다음 웹툰 중에도 유독 소중했다. 대사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사례로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니까.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면서 표현은 정확하고 새롭다. 일부러 문학적인 표현을 골랐다거나, 인기를 계산해서 힘 준 느낌이 아니라 내 감정을 오래 관찰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언어라는 게 한눈에 보일만큼 좋았다.


'일단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자.'고 말하는 이번 대사도 좋았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보니 이번엔 대사보다 저 말을 건네는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말을 나에게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겠지.

 

이대로 쭉 안 괜찮으면 정말 어떡하나. 경험상 이렇게 사이즈가 큰 문제는 보통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1.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2. 없어지진 않고 좋았다 나빠졌다 하며 딱지가 는다(안고가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2번은 괴로울 것 같아 엄두를 못내겠다. 미지근한 고량주를 오래오래 홀짝거려야 하는 느낌... 너무 싫다.


차라리 1번이 낫겠다. 어찌됐든 좀 해결되라.




같이 보면 좋을 컨텐츠들


1) 더 나쁜 쪽으로 - 김숨

확실히 세상은 더 나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난과 빈부격차, 저성장같은 경제적 지표로 한정하면 이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희망없는 세상에 대응하는 몸짓이, 난해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6846871


2) 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20대는 원인만 있고 결과는 없다" 뭔가 노력해도 생각한만큼 안 따라준다. 능력이나 돈, 기회, 시간을 아무리 투자해도 절대량이라는 게 필요한가보다. 억울하다. 그때까지 손에 쥔 거 없이 또 기다려야 하나. 아무래도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읽어볼만한 책.

https://brunch.co.kr/@getipower/39 



- 다음주 <컨텐츠를 처방해드립니다> 처방전

3월의 라이온 - 우미노 치카(허니와 클로버 작가), 네 곁에 있어 - 디어 클라우드, 청춘의 사운드 -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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