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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Mar 20. 2018

환절기에는 푹 자야 하는데

격동의 청춘에게 보내는 환대, 그리고 연대

0. 스트레스 해소법 101



회사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스스로 지켜본 적이 있다. '사람의 성격은 그가 압력을 받았을 때행동(선택)에서 드러난다'는 말을 듣기 전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라는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단계별로 어떤 감정이 지나가는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지.


관찰결과로 딱히 대단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악이든, 영화든, 책이든, 안쓰러울 정도로 콘텐츠를 찾아헤맨다.


내 감정을 건드려줄 컨텐츠를 찾아다닌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컨텐츠를 처방해드립니다>를 통해서 우선 나를 다시보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한창 마음에 격동이 일었던 중학생 시절에 집어든 소설책처럼,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불안감에 어쩔 줄 모르는 시기에 만난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없어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많으니까.


지난주는 갑자기 찾아온 환절기에 감기가 걸렸다. 어차피 누워도 잠은 안 오고, 겨우 찾은 내 시간을 이대로 흘려보내긴 아까웠다. 괜히 더 자주 사람을 만나고, 애매한 행사에 참여하고, 새벽까지 깨어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건 항상 적응하기 힘들다. 그저 멍하니 젓가락질을 반복하는 사람처럼 음악을 반복재생하고 책장을 넘기다가 발견한 컨텐츠들이다.



1. 너를 괴롭히지마, <네 곁에 있어>


사실 좀 고민했다. 단독공연 소식에 재빨리 예매는 했다만 한동안 잊고 지냈으니까. 디어클라우드는 왜 잊고 지냈는지보다 언제 빠져들었는 훨씬 선명한 밴드다. 푸른밤, 종현입니다를 통해 처음 접한 보컬 나인의 목소리는 세심하고 따듯했다. 청취자의 사연을 보듬어주는 마음새가 느껴졌고 이는 고스란히 <따뜻해>나 <얼음요새>같은 곡에서 드러났다. 덕분에 목요일이 기다려졌다. 추운 겨울 호빵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다. 급기야 그녀의 에세이 책도 다. 덕분에 에세이란 장르를 오랜만에 들춰봤다. 공연을 보러 간 건 물론이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49475


그렇게 빠져든 다음부터 그의 노래를 자주 들었고 아직도 애틋한 마음이 기억나지만 잠시 잊고지냈다. 이미 다른 일로 지쳐있었었지만 다시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양보하려고.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게 됐다. 이런 가사를 듣고도 심드렁하게 키보드를 두드릴 수는 없었다.


어두운 방안에 몸을 웅크리다 생각했어
넌 언젠가 모두를 놓아 버렸던 걸 후회할까



https://youtu.be/OslZoR6qHBM


너를 괴롭히지 마 널 괴롭히지 마  
제발


나를 엄청 괴롭히고 있었다. 환절기고 성장통이고 간에 이 모든 원인은 결국 나에게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능력부족과 부조리한 구조를 탓하다가 지칠 때쯤,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도망치고 외면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때 대충 뭉개고 넘어가지 않았면. 뭐라도 죽을만큼 했다면 이렇게 자괴감이 들지는 않았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탁탁 털고 일어나겠지만 지금은 예열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이 노래 덕분이었는지 나는 혼자서 망상을 키우거나 어두운 분위기를 즐기는 대신 밖으로 돌아다녔다. 더듬거리며 나를 드러냈다. 의외의 만남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위로받았다. 감기까지 걸려가며 헤매길 잘했다.


부디 이 세상에 혼자이려 하지마
나를 밀어내지마 난 네 곁에 있어
항상



2. 거지같은 시간을 지나면, <청춘의 사운드> 


베스트셀러든, tv 프로그램이든 '청춘'이 들어가면 일단 거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다'는 내러티브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피상적이고 즉각적인 위로가 와닿지 않았다. 30초를 견디기 힘들었다.


<청춘의 사운드>를 그렇게 넘겨버리지 않았던 건, 저자를 향한 신뢰가 있어서다. 힘들고 찌질했던 순간을 애써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껴안는 점이 신기했다. 적어도 위로를 위한 위로는 건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서문에서부터 터질줄은 몰랐지만.  


사람들은 내게 종종 '20대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다. 그때마다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한다. (중략)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손에 쥔 건 거의 없었다. 걱정도 많았다. 철학책과 잡지에 나온 남의 취향을 내 것인 양 포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등신 찌질 한심 지랄을 한꺼번에 썼는데도 담담한 감정표현으로 읽힌다. 청춘이란..

청춘을 이야기하며 장기하, 옥상달빛, 브로콜리 너마저의 곡을 가져온 점도 좋았다. 그들의 데뷔시절은 내가 가사를 한줄도 빼놓지않고 애드립까지 전부 외웠던, CDP를 사서 악기별로 음악을 듣던 그 시기와 맞물린다. 음악 자체를 열심히 즐기던 순간을 불러와 이 책을 꼭꼭 씹어삼켰다. 밑줄치고 싶은 문장투성이였다.


 가지 위로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거였다. 어쨌거나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지금 이 순간이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거지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매번 찾아오는 환절기에 또 감기가 걸려 코를 찡찡거리는 모습을 한심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자기 객관화가 어른의 필수 소양이라면, 자기인정(혹은 자기긍정)은 지혜로운 인간이 지닌 성숙한 태도다. 분명 그렇게 알고 있지만,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아" 까지는 아직 잘 안 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감기에 걸렸으니 일단 푹 자야겠다.


나를 열심히 관찰하고서 얻은 깨달음이다. 스트레스 받은 날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고, 편의점에서 산 초콜릿을 먹고, 페이스북을 껐다켜기를 반복한 다음 침대에 누워 웹툰과 유튜브에서 허우적거리고나면 지쳐 잠이 든다. 그렇게 13시간을 자고 나면 훨씬 괜찮아진다. 쌓인 숙제도 정성껏 풀게 된다.


회복이 머지 않았다. 푹 자고 일어나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http://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2091485



다시, 긴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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