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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성훈 Jul 29. 2018

창의성과 꾸준함의 상관관계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다

0. 서울대 합격의 비결

재수생 시절, "이렇게만 하면 서울대 간다!"는 공부천재의 비법이 그렇게 궁금했다. 당시에도 전교 1등하던 녀석들은 어딘지 분위기가 달랐다. 꼭 1등이 아니라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하나같이 좀 특이했다. 모르긴 몰라도 고수들만 아는 궁극의 비기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공부법이라고만 하면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하나만 빼고.


파릇파릇함은 진작에 갖다버린 재수생이었지만 무더위에 왠지 더 기운 빠지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 FM으로 강의하던 영어 선생님은 수업진행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 갑자기 책을 덮고 본인의 재수생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에 자신은 유별나게 머리가 좋지도, 확고한 목표가 있지도 않았다며. 반면 학원에는 공부로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넘쳤으니 나만 특별한 게 없는 것 같고 한없이 작아졌다고 한다(조금 의외였다. 그는 콤플렉스나 기복 따위 없이 늘 차분한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그렇게 열등감 속을 헤엄치며 내가 잘하는 게 뭘까 고민한 끝에 그는 성실함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1년 동안 지켜질 다짐을 책상에 새긴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공부를 마치는 일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이걸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단다. 그리고 정말 그 다짐을 실천했다. 날씨가 구려도, 날이 좋아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심지어 남들이 다 노는 날에도. 그는 서울대 영문과에 합격했다.


조금 의아했다. 뭔가 대단한 비법같은 걸 기대했는데 저렇게 교과서적인 결말이라니. 말만 저렇게 했지 그냥 타고난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성실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매일 16시간을 공부하고도 성적이 시원찮았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꾸준히 잘못 공부하면 아무 소용 없잖아?


하지만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이다'는 말만큼은 오래도록 내 머리에서 살아남았다. 당시의 고정관념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창의성'을 고민하는 요즘 꾸준함은 가장 자주 마주치는 단어다.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꾸준함을 말한다.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단어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1. 꾸준함. 뭘까

언제부터 올렸을까. 5년 전에 처음으로 업로드. “흔한 연습생의 크리스마스” 라는 5년전 곡이 그들의 그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데뷔 때부터 꾸준히 업로드했다. 이때부터 올렸던 트랙이 76개 모였다. 최신 업데이트 날짜를 보니 6일전(2018년 6월 11일), 9일전(2018년 6월 8일) 그렇다. 정상에 올랐음에도 꾸준하게 음악을 만들고 공개해서 대중의 반응(조회수, 댓글 등)을 보는 것. 꾸준함의 힘은 늘 느끼지만 늘 대단하다.

생각노트 블로그, BTS – 네시 (4 O’CLOCK) R&V 중에서


Q. 콘텐츠를 유튜브 주제 채널Topic Channel에 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알고리즘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건 이해하는데… 결국 왕도는 없다.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를 매우 계획적으로, 꾸준히 올리는 방법 외에는.

YouTube 아티스트 담당 데이비드 라파포트David Rappaport, SXSW Music 2018 Publy 리포트 


내가 지켜보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영감으로 비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헌신하고 고생한 끝에 비전을 발견하고 실현한다. 창의성은 100미터 달리기보다는 마라톤에 가깝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오랫동안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디즈니&픽사 사장 에드 캣멀 <창의성을 지휘하라>, PUBLY 뉴스레터에서 재인용


흔히 창의성이라고 하면 번뜩이는 영감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을 분석하는 글에서도, 유튜브 플랫폼 담당자도, 심지어 픽사 사장 조차도 성공의 비결을 꾸준함에 돌리고 있다. 비슷한 예시는 넘쳐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듯 글을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 스티븐 킹이나 "만화는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말했던 만화가 이두호까지. 이렇게 만화/음악/영상/소설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사업가/거장/신진 아티스트가 일관되게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는 드물다. 마치 온 인류가 창의성의 원천을  찾아 헤맨 끝에 발견한 유일한 비결이 꾸준함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왜 이렇게까지 꾸준함을 찬양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 결과물의 성공여부는 태생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앨범을 발표해도 강남스타일이 등장하면 게임 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의 취향이 변하기도 하며 기복 없이 좋은 작품과 꾸준한 인기는 판타지일 뿐이다. 실제로 콘텐츠 비즈니스 업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10개 만들어서 1개 터지면 대박이다." 타율이 10%만 되면 성공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고 시도하는 횟수를 늘려야 한다. 꾸준하게 하다 보면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가 하나둘 생기고, 적어도 한번은 크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창의성의 원천을 꾸준함에서 찾는 이유의 골자다. 공감한다. 성공률이 1%일 때 100번 도전하면 1번 성공하지만 10,000번 도전하면 100번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는 건 반쪽자리 정답이다. 그리고 반쪽짜리 정답은 오답보다 더 해롭다.


정말 창의성이 10번 찍기만 하면 넘어가는 나무에 불과할까?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꾸준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뭉뚱그려 넘어갔던 부분을 잘개 쪼개서 생각해보자. 꾸준함은 단순반복이 아니다.


꾸준함이란

1) 반복적으로 같은 상황에 뛰어들기
2) 한 세트 끝내기
3)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결과물에 녹여내며 발전하기

이렇게 3단계를 반복하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꾸준함이라고 하면 관성적으로 1단계, 2단계까지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의식하든 그렇지 않 3번째 단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글을 쓸 때, 누군가 제목을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재목 후보 20개를 만들고 고민했다. 짧은 문장으로 생각을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글을 본 다음부터 문장을 소리내서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호흡이 부족해지면 문장을 짧게 끊어쳤다.


알고 보면 꾸준함은 곧 '꾸준히 성장함'이다. 한 가지 일을 계속하다 보면 머리속에는 항상 맞춰지지 않은 퍼즐이 있다. 그 퍼즐의 남은 한 조각은 샤워를 하다가 문득 떠오르고, 생각없이 TV를 보다가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또 책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한 사람의 해법을 참고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꾸준함은 자연스레 전문성을 길러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성장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고 세상에 덕후는 많으니까. 꾸준함이란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이 되는 일인가.  


꾸준함이 왜 필요한지, 어떤 걸 꾸준함이라고 하는지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고나니 나는 뭘 꾸준하게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2. 나의 꾸준함

부끄럽게도 나는 꾸준히 뭔가를 해낸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금껏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썼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꾸준함을 유지한 일이 글쓰기다. 일기와 블로그, 각종 리뷰나 상념 등 어떤 글이든 썼고, 쓰고 나면 이전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리 똑똑하지도 않고 원대한 목표도 없으며 남다른 기술은 더더욱 없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있다. 글쓰기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야"라는 자괴감 무한루프에 빠졌을 때 "나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주는 고마운 존재다. 글 써서 어떻게 먹고살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막연하지만, 심지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도 막연하지만. 그렇다고 방향성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비즈니스. '월간 윤종신'이 그 무대다. 내 이름으로 8년간 콘텐츠와 내 생각을 '던졌다'. 그러니 이 플랫폼 자체가 지닌 성향이 생기더라. 소리 소문 없이 모인 사람이 50만명 정도 된다. 팬덤은 자꾸 요구하고 뭔가를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인데, 성향이 맞아서 들어오는 사람은 기대하는 게 적다. 배신·배반하지 않는다."

조선일보 윤종신 인터뷰 중에서


성향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 그거라면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10년 20년을 필드에 있어야 경험하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지식이나 전문가 인터뷰 따위로는 매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걸 느낀다. 궁금하다. 시간의 사이클을 한번 크게 돌리고 나면 나에게 어떤 것이 남을지. 나는 지금과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지.


우선은 이 공간에서의 글쓰기부터 꾸준하게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은 엄밀히 말해 꾸준함이라기보다 끊기지는 않았음에 가까웠다. 정기적인 패턴, 정시성 역시 꾸준함의 중요한 요건이니까. 탐나는 무기다. 호기심에 꾸준함을 얹어보자.





유튜버의 꾸준함


BTS의 꾸준함


 개발자의 꾸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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