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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Nov 28. 2024

불안이 나를 잠식할지라도...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by 전수영)을 읽었다

사실 요즘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했다. 회사에서도 별 일이 없고, 가족 안에서도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취미도 적당히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걱정이 맴돌았다. 과연 지금의 이 안정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회사에서 답이 보이지 않을 때 플랜B가 있을까. 나랑 와이프 중에 누군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부모님들은 왜 자꾸 몸이 약해지시는 것일까. 내년이면 전세 만료인데 집은 또 어째야 하나. 현재의 평화를 해칠 우려가 큰 나쁜 일들에 난 지레 겁을 먹는다.


나도 안다. 미리 걱정을 한다고 해서 미리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 남아있는 일말의 젊음도 야금야금 사그라들 것이고, 언젠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아프거나 곁을 떠나갈 것이라는 걸. 그렇게 흘러가며 살아가다가 나 역시도 먼 훗날 언젠간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이 모든 것들에 내가 어찌할 있는 게 없음을 알면서도 난 미련하게 걱정을 한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을 알면서도 그게 한동안 위로가 안 됐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조금만 덜 불안해하자. 부귀영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가족 수만큼의 부라보콘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그걸로 정말 괜찮지 않나. 원래 인생이 노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 만큼 우리는 이제 정말 영리해지지 않았나.(전수영,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 中, 14p)


집에서 날 기다릴 식구들을 위해 부라보콘을 사갈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요즘 유행하는 '아보하'라는 말이 의미하는, 아주 보통의 하루를 무난하게 보내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는 몸이 아프거나 집에 변고가 생기면 대번에 깨닫게 된다. 지금은 연로하신 아버지가 내 나이 언저리였던 그때, 퇴근길에 우리 남매들 먹으라고 사 왔던 전기통닭을 허겁지겁 뜯어먹으며 행복했던 밤들을 기억하니까.


현재의 이 무탈함이 언제 어느 순간 흔들릴지 알 수 없다. 그 안정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언젠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즐겁고 많이 웃으며 사는 방법을 늘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올 불행을 예습하기 위해 미리 불행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 맴돌고 있는 약간의 우울도 그저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방문했던 책방 소리소문에서 와이프가 구입했던 블라인드북의 포장을 열어보니 전수영 작가의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책 속의 많은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지만, 그중에서도 위의 저 문장이 가슴에 박혔다. 문장의 내용도 물론 좋았지만 그보다 더 위안이 되었던 건,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나만 불안해하는 게 아니었다는 일종의 동질감이었다. 다만 그 불안을 인정을 하며 더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 근심거리가 있다고 지금의 생활을 망치면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반복해서 설파한다. 와이프가 위로를 받고 싶어 산 책인데 정작 위로를 받은 건 나였다.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안 하고 말게 아니라 서둘러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마시는 삶을 평생 살고 싶다면 그냥 커피 마시기를 매일 이어가는 게 전부이다. 그게 다다.(262p)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안 하고 말게 아니라 서둘러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마시는 삶을 평생 살고 싶다면 그냥 커피 마시기를 매일 이어가는 게 전부이다. 그게 다다.(262p)


알고보니 나를 위한 블라인드북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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