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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Nov 28. 2024

대설주의보(by 천용성)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를 생각하며...

나 그댈 만나러 가는 날
눈이 많이 내린 터미널
운행을 멈춘 시내버스
...
그곳에 아직 남아있던 당신의
시간에 져버린 주름에 옛날 생각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었던 그곳의
맛이 없었던 팥빙수 옛날 생각나요
(천용성, '대설주의보' 中)


왜인지 모르겠는데 난 이 노래를 들으면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라는 시가 떠오른다. 두 작품은 시공간도 전혀 다를뿐더러 어투도 상이하고 서로 전혀 연관성 있는 내용이 아님에도.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中)


두 작품의 공통점은 그저 눈이 많이 내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뿐이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모습이 풍경화처럼 오롯하게 그려지는 그 느낌이 왠지 비슷하다고 느껴져서일까. 눈이 오니 그 사람과 함께 먹었던 맛없는 팥빙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눈이 날리니 누군가를 기다리며 소주를 마시는  마음이나 애틋하기는 매한가지. 그 모습들이 쓸쓸하면서도 슬퍼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왜 눈은 사람을 온통 뒤흔드는 것일까...(꽤 오래전 삿포로 풍경)




시를 읊듯 노래를 읊는 천용성의 그 무심한 목소리는 마치 시인과도 같다. 그래서 난 이 노래가 참 좋다. 겨울엔 마음이 따뜻해져서 좋고, 여름엔 눈을 떠올리니 시원해져서 더 좋다. 어젠 눈이 와서 벅찬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정선의 노래를 좋아한다 했지만, 난 또한 이렇듯 눈이 오는 풍경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천용성의 노래도 좋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같은 것을 보고도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옛날 생각나요'라는 다소 순수하고 담백한 표현이, 오히려 가슴 사무치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느끼게 만들면서 이 노래를 계속 듣게 다. 그러고 보니 눈이 예년보다 일찍 온 탓에... 올해는 이 노래를 더 많이 들을 것 같다.


https://youtu.be/36S6frKMXX8?si=Hn3qy9dOe0-RNV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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