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지지 않았는데 눈이 내렸다
맨발로 기억을 거닐다 떨어지는 낙엽에
그간 잊지 못한 사람들을 보낸다
(악뮤, '시간과 낙엽' 中)
단풍이 새빨갛게 물들고 물들다가 지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낙엽이 되는 과정을 보며 우린 시간이 간다는 것을 가늠한다. 그 과정이 너무 아름다워 감탄을 연발하다 이내 마음이 쓸쓸해지는 게 가을이란 계절의 묘미인데, 올해는 그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어버린 느낌이다. 늦은 더위의 텃세에 설 자리를 못 찾던 가을이 엄청난 폭설을 들이밀며 습격한 겨울에 쫓겨나버린 것 같아 화가 날 지경이랄까.
비록 이렇게 서운하게 가을을 보내야 했지만, 제목에서부터 가을의 운치를 오롯이 담은 '시간과 낙엽'을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는 중이다. 맨발로 기억을 거닌다는 상상력도, 낙엽에 잊지 못한 사람들을 보낸다는 감성도 그저 놀랍지만 그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그 가사 속 내용을 곱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이수현의 목소리다. 어떻게 저런 음성이 사람의 목을 통해 나올 수가 있는 것인지.
올해 가을은 낙엽이 아닌 첫눈과 함께 물러났지만 그 자리를 가을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로 채운다. 이유 없이 우울하고 서글픈 시기에 사람의 목소리로 위안을 받는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정신없고 떠들썩한 연말엔 조용히 그런 시간을 갖는 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가을도, 올해도 이렇게 흘러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