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마흔 넘으면 상체보다 다리 힘이 먼저 빠져요. 이제 예전처럼 빨리 치려고 하면 발이 늦게 따라와서 칼이랑 균형이 안 맞을 거예요
얼마 전 있었던 학교 검도 동아리 창립 행사에서 YB와의 시합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나에게 OB 후배 녀석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다. 나보다 훨씬 검력도 오래되고, 졸업 후에도 쉼 없이 열심히 운동해서 이제 어느덧 연사 6단이라는 고단자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의 눈에는 보였나 보다. 내가 재학생 후배와의 시합에서 지지 않기 위해 무리하던 모습이.
매년 한번 있는 창립전에서 행사 말미에 벌어지는 OB와 YB의 시합은 늘 긴장감이 넘친다. 선배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OB들과 현역으로서의 자신감이 넘치는 YB간에 벌어지는 승부는 설령 양 팀 간 전력 차이가 꽤 난다고 해도 의외로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선후배간이라고 해도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시합 전 긴장감은 선후배간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나보다 스무 살 넘게 어린 후배와의 시합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일단 어리고 빠른 데다가 올해 전국대회 단체전 준우승까지 하며 물이 오른 후배였으니 기세와 실력 모두 보통이 아니었다. 과감하고 멋지게 머리치기를 해보고 싶었지만, 언제든 받아칠 준비가 되어있는 상대를 제압할 만큼 나의 공격은 강하지 못했다. 어설프게 머리를 몇 대 건드려봤지만, 타격과 발구름이 맞지 않으니 점수가 되지 않았다. 시합 중에도 '이상하다... 예전 같으면 분명 점수인데'라며 의아해했던 차였는데, OB 후배는 바로 그 점을 넌지시 알려준 것이다. 처음엔 그 지적에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내심 당황했지만(이 녀석이!), 다음날 집에서 생각해 보니 너무 맞는 말이라 오히려 고마웠다. 역시... 같이 나이 들어가는 입장이니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게 된다.
이 친구들의 저 에너지를 어찌 당한단 말인가
난 지금도 죽도를 놓지 않고 시간과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검도장에 나가고 있지만. 수련기간과 상관없이 이젠 내가 후배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안다. 체력도, 운동량도, 그리고 기술을 체화하는 감각도 정점에 올라있는 세대를, 저 모든 것들이 하향세라 오로지 익혀둔 기술과 몸에 밴 노련함으로 대응해야 하는 우리 세대가 당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높은 경지에 올라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들을 기술과 실력으로 제압하는 분들도 있지만 난 그 레벨에 다다르지 못했으니까. 검도대회에서 연령별로 시합을 진행하는 이유가 다 있다.
그래서 이젠 정말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연습이 아닌, 나만의 검도를 하기 위한 수련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검도부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배웠던 기본들... 어깨 힘을 빼고,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균형 잡힌 죽도 파지를 하는 것부터 되짚으면서, 비록 빠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늘어지지도 않는 적당한 속도의 검도를 하고 싶다. 시합으로는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나와 같이 운동하는 후배들의 수련에 도움이 되기 위해 검리에 맞는 바른 자세와 좋은 칼을 쓰는 선배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맞더라도 자세와 기세는 흐트러지지 않는 그런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길은 정말 쉬운 게 아니겠지만.
난 지금도 호면을 쓸 때 긴장되고, 수련 후 호면을 벗을 때의 그 시원함과 후련함이 너무 좋다. 시간이 갈수록 그 기분 좋은 느낌은 더 자라나는 것 같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굳이 내가 아직 나이 들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젊은 친구를 이기겠다고 허우적대기보다는,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진 현실을 인정하되 재미있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 그래서 후배들에게 나이가 들어도 멋지게 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면 그걸로 족하다.
내년 창립전에서는 올해처럼 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것이 아닌, 비록 누름손목치기를 맞든 받아허리치기를 맞든 상관없이 과감한 머리치기를 시도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허리를 펴고 정면으로 들어가는 기본부터 다시 연습해야 할테고.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왼쪽 종아리가 뭉쳐 살짝 고생도 했지만, 이런 반성을 하게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올해 창립전 참가는 보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