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생뚱맞은 이야기지만 내 대학시절 가장 큰 바램은 서울시 대학검도 연맹전 단체전 우승을 꼭 한번 해보는 것이었다. 전공인 정치외교학에서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거나 석박사 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었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인생의 견문을 넓히는 것도 아닌, 고작 동아리 활동으로 하고 있던 검도부에서의 시합 우승이 그 꽃 같던 대학생활의 목표였다니. 검도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을 이루기 위해 대학생활 내내 열과 성을 다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실 개인전 우승을 하기엔 내 역량이란 게 한참 모자라기도 했지만, 개인전 타이틀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검도의 묘미는 누가 뭐래도 5인조 단체전임은 검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니까. 선봉부터 주장까지 다섯 명이 이어가며 펼치는 격렬한 승부 끝에 승리하는 그 짜릿함은 정말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내가 검도부에 처음 가입했을 당시 선배들이 고된 훈련 끝에 단체전 우승을 해내는 멋진 모습을 보며 나도 졸업 전에 꼭 저 우승 깃발을 가져와야지 하며 다짐했던 목표는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더랬다. 나의 운동은 늘 8강에서 머무르는 정도였고, 결국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채 졸업을 맞이했다. 그리고 끝내 이루지 못했던 그 목표를 졸업하고 17년이 지난 후에야 OB팀 명패를 달고 이뤘다. 참 오래도 걸렸다...
대학 연맹전 OB전은 나처럼 재학생 시절 못 이룬 목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졸업생들을 위해 대학연맹에서 매년 이벤트로 마련하는 리그다(당연히 참가팀은 재학생부에 비해 적다ㅎ). 신체 컨디션이 최고조였던 20대 시절 시합장에서 훨훨 날아다니던 사람들이 어느덧 나이를 먹고 중장년이 되어 다시 겨루는 시합. 비록 몸도 둔해지고 기세도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죽도를 놓지 않고 좀 더 성숙한 검도를 하는 모습을 서로 확인하는 그런 축제 같은 자리랄까. 너무나 오랜만에 연맹전의 그 거칠고 후끈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생 검도인들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했지만 잘하는 후배 OB들에게 업혀가다시피 하며 맞이한 좋은 결과라 기쁨보단 부채감이 더 큰 그런 대회였다. 시합에서 내 역할을 제대로 못해 팀에 상당한 민폐를 끼쳤던지라 대회가 끝난 후에도 아주 개운하거나 후련한 마음은 아니었다. 만약 결승전에서까지 내 역할을 못하고 졌더라면 그 트라우마는 정말 엄청났을 것 같다. 물론 어떤 팀원의 부진을 다른 팀원이 메워주며 승리를 가져오는 게 단체전의 짜릿한 묘미지만, 내가 그 부진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으니까. 그것도 후배들에게 짐을 지우는 선배가 되는 것은 더더욱.
어느덧 나를 뛰어넘어 팀의 메인 역할을 해주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그런 위치가 되었다.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의 운동을 하며 날 이끌어주는 어린 OB후배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짐이 될까 걱정스러운 그런 처지가 살짝 서글픈. 암튼 매달 주말 아침에 한 번씩 함께 운동하며 결국 첫 단체전 우승이란 선물을 안겨준 OB팀원들과, 우리를 목놓아 응원해 준 재학생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그리고 17년간 유예한 목표를 얻어낼 때까지의 시간을 버틴 나에게도 수고했다는 셀프 격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