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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Mar 04. 2024

아이러니

아... 이러니 아이를 키운다구요?

요즘 아침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잠이 덜 깼음에도 피식 웃게 만드는 광고가 있다. '아이러니' 라는 단어에 언어유희를 가미해 '아... 이러니 아이를 키우나 봅니다' 라며 출산을 장려하는 공익광고다. 아기를 낳으면 얼마나 좋은데 대체 애를 왜 안 낳냐며 양가 부모님이 할법한 잔소리를, 무려 국가가 나서서 하는 모양새에 실소가 터지곤 한다. 이게 맞는 걸까.


1.08에서 0.72가 될 때까지


내가 한창 언론사 입사 준비를 위해 신문기사를 달달 외우던 2006년 정부에서 발표한 합계출산율이 1.08명이었다. 당시 언론에서 저출산으로 인해 나라가 망할 듯이 기사가 쏟아지던 시절이라 지금도 저 숫자는 잊어버리지 않는다.(상식 시험에 내기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그 후로 무려 18년이 지나 합계출산율이 0.72명이 되면서, 이젠 정말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걱정들이 태산이다.


상황이 심각한 건 인정하지만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렇게 저출산이 난리라고 약 20년을 근심했으면서 왜 상황은 계속 악화가 되고 있는 것인지. 17년간 저출산 대책에 무려 500조를 쏟아부었다는데 왜 출산율은 오르지 않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선생님들은 계속 열악한 처우에 힘겨워해야 하는지. 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이나 근본적인 분석 없이 저렇게 감정에 호소하는 광고를 내면 무언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는 것인지.



내가 결혼했던 11년 전에도 집값은 이미 미쳐 있었지만, 그래도 신혼부부가 그동안 모은 돈을 긁어모으면 방 2개짜리 빌라 전세는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가 그렇게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젊은 부부들에게 저 얘기를 해줄 수가 없다. 이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번 돈을 끌어모아도 부모님 도움과 은행 대출 없이는 마땅한 전셋집도 얻기 어려운 이들에게, 그저 저출산이 문제니 아기를 낳으라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두 사람이 함께 일해도 돈을 모으기 어려워 결혼을 미루고, 뒤늦게 결혼을 해도 맞벌이를 하느라 부모님 말고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육아를 망설이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어찌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현실적으로 이익이라고 판단될 수 있는 환경 속에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공익' 이란 허울로 저런 광고를 만들어 보여주고 들려준다는 게 진짜 아이러니다.


나라가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들에게 해줘야 할 말은, 두 사람이 아기를 낳는다면 그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은 국가가 어떻게든 만들어주겠다는 제도적인 약속이다. 그런 공적인 신뢰는 주지 않은 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을 마치 아이를 예뻐하지 않는 비정한 사람들 인양 은근히 몰아가는 저 광고를 듣고 출산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기나 할지 모르겠다.



출산율을 걱정하기 전에, 지금 당장 힘든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미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 아닐까. 그래야 그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을 테니까. 이 과정이 선행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저출생 문제 끝내 해결되지 못할 것 같다. 저 공익 광고가 이런 생각을 너무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이런 게 아이러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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