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어떤 얘기를 하다가 '내가 군대에 있을 땐 말이야~' 란 멘트를 자주 들먹이는 이유는, 군대라는 집단이 조직 생활의 전형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폐쇄된 데다 상명하복이 조직 유지의 생명인 곳이기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의 관계가 어떠냐에 따라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되는 그런 조직인 셈이다. 그런 곳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군대에 있으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저 사람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야' 라는 것이었다. 대개는 성격이 거칠고(속칭 'x같고') 후임들을 모질게 대하는 고참들을 평가할 때 저런 말을 많이 썼다. 그런 평가를 듣는 고참들의 공통점은 평소엔 후임병을 괴롭히고 갈구는 행위를 일삼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관대해져 잘해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후임병은 '아... 이 사람 사실은 너그럽고 괜찮은 사람이구나!' 라는 감정을 느끼며 감동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사실 사람을 길들이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다.
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안다. 99번 괴롭히다가 한 번 잘해주는 게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평소에 잘해주면 기어오르게 마련일 뿐이니, 아예 그런 엄두를 못 내도록 내내 밟아놓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온정을 한 번 베풀면 내게 한없는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을. 무려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이라는 훌륭한 평가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조직은 대개 폭력적이고 삭막하다. '군대 같은 조직' 의 특성이 대개 이러하다.
내가 누군지 알고?
원래 '츤데레'란 일본말은 겉으로는 인정머리 없고 쌀쌀맞아도 실제로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지만, 요즘 일부 매체에서는 약한 사람에게 저런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자들까지 츤데레라 칭하며 마치 속내가 깊은 사람인 양 묘사하곤 한다. 실상은 연기력이 좋은 소시오패스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함께 있는 이들의 영혼까지 학대하는 저런 사람들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 우린 조직 생활을 통해 목격하고 있지 않던가.약 16년간의 직장생활에서 목격한 이런 이들의 주변은 대개 모두 불행했다.
언어의 힘은 강하기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이란 말도 원래의 좋은 의도와는 달리, 뜻하지 않게 뱀 같은 자들의 가스라이팅 행위를 옹호하는 그런 표현이 될까 우려스럽다. 알고 봐야 좋은 사람보다는, 모르고 봐도 좋은 사람이 우리에겐 더 무해한 사람이 아닐까. 한 사람을 온전히 안다는 것은 참 힘든, 어쩌면 불가능한 일에 가까우니 말이다. 그저 누군가에게 모질지 않고 따뜻한 존재가 되는 것만으로도, 우린 참 큰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