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라디오를 켠다. 아침 라디오가 주는 편안함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내가 라디오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조건은 명확하다. 무조건 음악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언제부턴가 라디오가 TV를 따라가기 시작하면서 DJ의 말장난과 개인기에 의존하는 방송이 많아졌는데, 그럴 거면 그냥 TV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매일 출근 전 듣는 CBS 라디오의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은 그런 면에서 내가 매일 들을 수밖에 없는 방송이다. 좋은 선곡과 과하지 않은 DJ 멘트가 참 조화롭기 때문이다.
내 아침의 우울을 덜어주는 고마운 라디오 방송
이 방송의 PD가 곧 바뀐다는 소식을 지난주부터 김용신 DJ가 틈틈이 알려주었다. 으레 있는 개편 때문인가 했더니 정년퇴직으로 방송을 그만둔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PD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청취자에게 해 줄 이유가 없음에도 그렇게 안내를 해주는 것을 들으며 함께 방송을 만들어 나간 동료로서의 의리와 배려가 느껴졌다.이른 새벽부터 라디오 스튜디오를 지키며 선곡을 하고 청취자 사연에 함께 공감하면서 방송을 만들어 간 선배 동료를 아름답게 보내줄 준비를 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하게 울리기도 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 16년간 느꼈던 건 회사에서 아름다운 이별은 없었다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따뜻했던 선배들은 회사에서 찬밥 대접을 받다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고, 후배들에게 모질게 대했던 인간들은 후배들의 멸시와 냉대를 애써 모른 체하며 회사가 만들어준 퇴직 자리에서 건조한 박수를 받고 혼자 만족하며 떠났다. 적어도 내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왔다. 당장 눈앞의 이득과 불이익에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으며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결국 외로운 처지가 되어 잔뜩 주름진 얼굴로 직장을 떠났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위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아래를 쥐어짜고, 후배를 대신해 책임지기보단 후배들 뒤에 숨어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득세하는 시대를 살면서 선후배란 용어가 오용되는 현실이 슬펐다. 한 살이라도 더 먹으면서 더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아랫사람 챙기는 것이 아닌 자기 몸보신에 사용하기 급급한 그런 팍팍한 현생을 살다 보니,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 된 저런 훈훈한 이별 준비 장면이 더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요즘도 여전히 레트로가 트렌드지만, 우리가 정말 잃지 말아야 할 레트로적인 감성은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오늘 클로징에서 DJ가 울음을 참으며 제작진을 소개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퇴임하는 그 PD분은 함께하는 이들에게괜찮은 동료이자 선배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코끝이 찡했다. 나와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울어주는 사람이 회사에 하나라도 있다면 그건 정말 성공적인 사회생활이 아니었을까. 사실 난 그 PD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나 역시 그분이 만든 방송을 들으며 출근 전의 우울함을 달래며 신세를 진 셈이니, 그분의 퇴직 후 삶을 응원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