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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by 에픽하이)

나도 트로트가 좋아지는 나이가 된 걸까

by radioholic
딴따라 딴딴따 트로트 가락에
맞춰서 움직여 네 박자
땡벌 같은 하루에 유일한 동반자
술 깨면 떠나 사랑은 나비인가 봐
(에픽하이, '트로트' 中)


어린 시절에 대한 내 가장 오래된 기억 중에 하나는,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연립주택에서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을 앞에 두고 현철 아저씨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에 맞춰 앉았다 일어났다 춤을 추던 장면이다. 그런 나를 보면서 자지러지듯 웃던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아주 따뜻한 색감으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내가 가장 처음 즐겼던 음악의 장르는 바로 트로트였던 셈이다.


우리 집은 아버지 대신 엄마가 운전을 하셨다. 우리 남매들의 등굣길도, 가끔 있는 나들이도 엄마가 운전하시는 차를 통해 이루어졌다. 엄마는 차에서 늘 라디오 아니면 트로트 가수의 테이프를 트셨다. 머리가 굵어진 나는 어린 시절의 저 추억은 없었다는 듯 엄마는 왜 트로트만 듣냐며 짜증을 냈고,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그때의 엄마 나이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어느새 중년의 시기에 접어들었지만, 난 아직까지 트로트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만큼 트로트를 멀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저 말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서인지, 나이를 먹으면서 트로트 음악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많이 옅어져 있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취업을 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참 많은 회식을 했다. 회식의 2차는 당연히 노래방이었고, 나이 지긋한 부장님, 팀장님들을 모셔야 했던 말단 직원인 나는 그때 깨달았다. 회식에서만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트로트에 열광한다는 것을. 얼큰하게 취한 상황에서 애매한 댄스곡이나 발라드보다는, '무조건 무조건이야~~!'를 부르짖을 때 분위기가 고조된다는 것을 말이다. 트로트에 담겨 있는 특유의 뽕끼가 흥의 민족인 우리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타격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지금처럼 트로트가 유행하기 한참 전인 2009년에 에픽하이가 '트로트'라는 곡을 발표했을 때,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한 그들의 존중이 느껴져서 좋았다. 당시 가장 핫한 장르였던 힙합으로 트로트라는 올드한 장르를 리스펙 할 수 있다니. 타 장르에 폐쇄적이지 않고, 시대가 지난 장르라고 무시하지 않는 그들의 열린 감성이 좋아서 한동안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들었다. 요즘 TV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 소음공해와 같은 트로트 프로그램들에는 이런 존중이 느껴지지 않아 거부감이 느껴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춤추게 했던 노래의 주인공인 현철 아저씨는 이제 세상에 없다. 그리고 '네박자'를 부르셨던 송대관 아저씨도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시며 우리를 슬프게 했다. 그분들과의 이별을 통해 결국 시간은 여지없이 간다는 것을 확인하며 서글퍼졌지만, 그들이 남긴 노래는 계속 남아 우리들을 달래주겠지. 한 때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셨던 그분들이 하늘에서도 노래와 함께 행복하시길 기원하며.


https://youtu.be/Wsdab1g9BMY?si=WZ7OnOZ_2EuXwJ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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