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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by N.EX.T)

이 노래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by radioholic
어젯밤 술이 덜 깬 흐릿한 두 눈으로
자판기 커피 한 잔 구겨진 셔츠 샐러리맨
기계 부속품처럼 큰 빌딩 속에 앉아
점점 빨리 가는 세월들
THIS IS THE CITY LIFE
(N.EX.T, '도시인' 中)


12년 전 신혼여행으로 스위스에 갔다가 놀랐던 장면이 있다. 바깥에서 집 안이 훤히 보이는 주택 풍경도 놀라웠지만, 더 신기했던 건 오후 5시밖에 안 됐는데 집집마다 가족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동네 어귀의 가정집과 같이 생긴 보험회사 사무실도 이미 불이 꺼진 뒤였다. 한적한 외곽 마을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의 '저녁이 있는 삶'은 당시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내겐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평일 오후의 스위스 풍경(2013)


넥스트 1집에 담긴 '도시인'이란 노래가 나온 지 무려 33년이 지났다. 90년대 초반의 시대상을 반영한 저 노래 가사 내용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했을 때, 달라진 건 자판기 커피 한 잔이 '아아'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린 큰 빌딩 속 기계 부속품처럼 고단한 도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


노래 후렴 가사 속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그 외로움을 잊기 위해 밤마다 뭉쳐 술을 마시고 으쌰으쌰 하며 의기투합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지나간 후엔 더 외로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결국 서로가 경쟁자이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며, 언제든 돌아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수없이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과 사람에 치이고 질린 사람들은 늘 도시 탈출을 꿈꾸지만, 그것은 언제나 꿈에 그치기에 더 쓸쓸하고 삭막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속성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사무실의 부속품인가요?




어제 야당 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주 4일제 근무국가로 가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두고 마치 벌집을 들쑤신 듯 소란스럽다. 그 소란 속에는 주 4일 근무를 반기는 사람들과 그렇게 하면 일은 누가 하냐는 이들의 의견이 뒤엉켜있다. 하지만 숱한 논란 속에 주 5일제가 시작됐던 2004년 이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한다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AI가 사람을 대체한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일을 AI에 맡기고 사람들은 좀 놀면 어떠냐는 의견에는 정색하는 이들을 보면 의아해지곤 한다. 그럴 거면 대체 AI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들은 왜 필요한 것일까. 이미 모두가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가 이루어진 세상에서, 사람은 최소한의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 만큼 위험하고 불온한 것인지 난 정말 모르겠다. 노래 속 숨 막히는 도시인의 모습은 이 사회에서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도.


https://youtu.be/7OU7vwRYWAE?si=bUBy7BxV8nTxDT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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