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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이야기(by 전진희)

그냥 들어주세요

by radioholic
난 고작 이런 사람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대는 모른척해 줘요
오 제발 날 가엽게 여기지 말아 줘요
이건 사소한 이야기일 뿐이죠
(전진희, '사소한 이야기' 中)


오늘 하루가 황폐했다고 느껴질 때,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주 작고 별 거 아닌 얘기들을 나눌 사람이 없는 날이었던 경우가 많다. 나의 시시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부재한 일상이란 건, 혼자 부루마불을 하는 것과 같은 서글픈 풍경이다. 그런 쓸쓸함이 싫어서 우린 친구를 찾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지 않 싶다.


관계의 형태가 친구, 연인, 배우자 중 무엇이든 상관없이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은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치부나 한계마저도 내 모습이라는 걸 아는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세상 쓸모없는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만큼 친밀한 관계는 없으니까.


쓸모없고 자질구레한 얘기를 나눌 사람이 있나요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 중에 하나는 친한 사이일수록 진심 어린 조언이나 따뜻한 말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말을 해주겠냐며 하는 말들이 되려 상처를 헤집는 경우가 많다. 물론 친한 사이일수록 해주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때로는 그냥 묵묵히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한 날도 있기 마련이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며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촌철살인의 명쾌한 해답보다는, 그저 말없이 들어주는 작은 입과 넉넉한 귀를 가진 사람이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더라도 굳이 그걸 드러내지 않고, 설령 내 모습이 안타깝다 해도 동정하지 않으며 그냥 모른척해주는 것은 무심함이 아닌 따뜻함이라는 것을 우린 참 모르고 지낸다. 나와 마음의 거리가 있는 타인들이 나를 함부로 동정하는 법이다.




작년 어느 날인가 라디오에서 정말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홀리듯이 가수를 검색해 봤다. 누가 이토록 쓸쓸한 목소리로 노래를 읊조리는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나쁜 꿈으로 눈뜨는 새벽 다섯 시'라는 첫 소절 속에 담긴, 잠도 길게 못 자는 고단한 삶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아 서글펐다. 이런 노랫말은 겪지 않으면 결코 쓸 수 없다. 사람도 사람에 많이 지쳐 있던 것일까.


지금의 생활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우울하더라도,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삶은 결코 비루하진 않다. 값싼 동정을 주기보단 차라리 말없이 맥주 한 잔 따라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꼭 한번 둘러보시길.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떠오른다면, 내 인생이 다소 심심하더라도 고독하진 않다는 증거일 테니.


https://youtu.be/IkoYaTgAY8U?si=RrIEIaWa_kxXjf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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