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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Mar 16. 2024

황혼(Twilight)을 아냐구요?

제가 아는 기타곡 중에 최고였어요

신혼 초, 와이프와 함께 기타 레슨을 잠깐 받은 적이 있다. 홍대 근처 어느 지하 작업실에서 만난, 누가 봐도 기타리스트의 아우라를 풍기는 레슨 선생님은 아이스브레이킹 겸 기타로 연주하고 싶은 곡이 있냐고 물었고, 이윽고 이어진 우리의 호기로운 대답에 선생님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황혼이요???


약간 실소를 금치 못하는 반응에 마치 하지 말아야 할 금기의 질문을 한 것처럼 주눅이 들었던 우리는 다신 그 곡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 후 두 달간 기본 코드와 노래 몇 곡을 배우고 레슨을 마무리했다. 당시엔 저 반응에 살짝 언짢기도 했지만, 그분이 왜 그런 리액션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알 수 있었다.(써놓고 보니 마치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좋은 분이셨어요ㅎ)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황혼은 기타 입문곡이라고. 황혼을 치고 싶어 기타에 입문하지만 결국 좌하고 기타를 때려치우게 만든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결국 빠져 죽게 만들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과 같은 마성의 매력을 가진 곡인 셈이다. 서글픈 애조를 띤 멜로디에 온갖 핑거스타일의 기술을 다 녹여 넣어 듣는 사람들을 홀리는 이 연주곡은 10년 넘게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쉴 새 없이 변주되는 멜로디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는 심경의 변화를 그대로 곡에 녹여놓은 것 같은 그 감정선이 느껴진다. 같은 슬픔이라도 그 깊이와 색깔은 늘 같지 않고, 격하게 분노하다가도 이내 잔잔한 서글픔으로 바뀌는 그런 감정의 흐름이 오롯이 전해진다고 할까. 하루하루를 보내며 머릿속이 엉켰을 때, 마음이 복잡하거나 화가 날 때, 일을 마치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갈 때 무한반복하면 어느샌가 안정을 찾게 해주는 치료약 같은 곡이 나에겐 황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황혼을 완곡했다며 연주 영상을 올린다. 기술적으론 손색이 없지만 원곡에 담긴 그 감정의 깊이까지를 보여준 연주는 없었다. 나 역시 10년째 더듬더듬 대며 어설프게 따라 하는 이 곡을 완곡했다고 말할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오시오 코타로는 대체 어느 정도로 깊은 감수성을 가진 사람인 걸까. 감히 말하건대, 황혼은 내가 들어본 수많은 기타 연주곡 중 가장 내 마음을 울린 곡이다. 앞으로도 난 저녁 퇴근길을 걸으며, 멍하니 의자에 앉아서 황혼을 들으며 지친 마음에 위로를 받겠지. 혹시 이 곡을 몰랐던 분들이 계시다면... 그 위로와 위안의 감정을 함께 느껴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mXKngjnnoNw&list=RDmXKngjnnoNw&start_radio=1

<Kotaro Oshio - Twi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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