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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Mar 10. 2024

인생은 F코드가 아닐까

그냥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것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을 좌절케 만드는 가장 무자비한 통곡의 벽이 바로 F코드다. 검지손가락으로 여섯 줄 전체를 누르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각각의 줄을 눌야 하는 이 코드는 일단 한 번에 짚기도 어렵고 검지에 가해지는 통증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어렵고 아프게 낑낑대며 짚어도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좌절감까지 삼중고가 겹치며 수많은 기린이 들을 포기의 길로 내몰곤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F코드 때문에 기타를 포기했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하지만 몰랐다. F코드보다 잡기 어려운 코드가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1~ 6번 줄을 가로지른 저 bar 앞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주저앉았던가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불문율이 있다. '하다 보면 된다' 는 것. 당최 잡히지 않던 코드도, 에니그마 같은 난공불락의 암호처럼 보이던 악보도, 천상계의 고수들이나 구사할 것만 같던 해머링이나 풀링오프 같은 기술들도(기타 줄을 때리거나, 당겼다 떼며 소리를 내는... 그런 거다...ㅎ), 기타를 놓지 않고 그냥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된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건 내 경험상 맞는 말이었다.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틱틱 소리만 나던, 그래서 저 F가 'Fxxx' 의 약자는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던 그 F코드가 어느 날 갑자기 '디리링' 하는 맑은 소리를 내며 손에 잡히기 시작했으니까.


기타에서 F코드를 극복하는 순간 연주할 수 있는 곡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단지 F코드를 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반복된 연습들로 인해 파생된 부수 효과들이 많기 때문이다. 줄 전체를 누르는 요령, 빠르게 코드 이동하는 방법 등을 그렇게 익혀나가게 되니까. 약식으로 쉽게 F코드를 잡는 방법이 없진 않지만, 그 방법으론 F코드 본연의 매력적인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결국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 검지를 세워 여섯 줄 위에 올려놓게 된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살면서 뭔가 새로운 일이나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 너무 엄두가 안나 어찌할 줄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할 줄 아는 게 없고, 내가 지금껏 해온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금방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막막함은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찾아보지만, 결국 정답은 일단 그냥 해보는 것이었다. 해보다가 막히면 물어보기도 하고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지간한 건 되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더디고 고통스러워서 문제지만, 결국 버티면 뭔가 되긴 되더라.


결국 기타와 삶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정공법으로 어려운 무언가를 극복하고 나면 그 힘으로 다른 일들까지 이뤄내는 탄력이 생긴다는 것. 그래서 힘들었던 만큼 언젠가는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 F코드를 극복한 덕분에 내가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검정치마의 '기다린 만큼 더' 는 물론, 예전엔 엄두도 못 냈던 이런저런 노래까지 함께 뚱땅거리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그러니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일단 버텨보시길. 이게 저 망할 놈의 F코드가 내게 던져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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