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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Mar 01. 2024

마흔 넘어 기타를 배운다는 것

안잡히던 코드가 문득 잡히는건 정말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코로나19의 시기가 지나가면서 문득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활동이 통제되어 집에만 있던 시간이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무료했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기타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하지만 그런 신나는 상상이 깨지는 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기타모임이나 동호회를 이리저리 검색해봐도 40대 아저씨를 반기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집대상은 대부분 20대~30대였고, 40대 이상은 정중히 거절한다며 노골적으로 공지하는 곳도 있었다. 대체 중년의 아저씨들은 각종 모임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쳐왔던 것일까. 이런 생각에 부끄러우면서도 내심 나이로 접근 자체를 막아버리는 모습에 야박함을 느끼기도 했다. 'NO아재Zone' 이란게 있는 것일까.


사실 개인레슨은 내 선택지에 없던 항목이었다. 선생님과 단 둘이 앉아 한시간을 보낸다는게 내 성격상 참으로 고통스러운 미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가 하는 것을 한시간 내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전에 잠시 기타학원을 다닌 적이 있지만 대부분 그룹레슨이었던 것도 나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동호회들은 40대 아저씨를 단호히 거부했고, 코로나의 여파로 그룹레슨을 하는 학원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렇게 수많은 검색끝에 개인레슨을 하는 성인 음악학원을 찾아갔고, 다행히 정말 좋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며 2년째 즐거운 기타 생활을 하고 있다.


살면서 반드시 악기 연습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악기 연습하기 싫을 때 읽는 책」에서는 '살면서 반드시 악기 연습을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란 소제목으로 운을 띄우며, 다 큰 어른이 악기를 배우는 것에 대하여 '내가 즐기고 있는가?', '그걸로 충분한가?' 라는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스' 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현실적인 고민이 많겠지만 저 두가지만 충족되면 다른건 무슨 상관이냐며. 도통 진도가 마음처럼 나가질 않아, 기타라는 악기를 좀 더 빨리 진지하게 배웠으면 어땠을까를 아쉬워하던 차에 읽은 저 책은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어차피 프로뮤지션이 될 재능도, 나이도 안되는 나에겐 그저 기타를 연주하며 코드를 하나씩 익혀가는 즐거움, 절대 못칠 것 같았던 노래를 더듬더듬이나마 끝내 연주하게 되었을 때의 희열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악보를 보며 그저 상상속의 유니콘처럼 내가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던 dim7 같은 코드를 무심코 짚게 되었을 때의 쾌감을 다른데서 언제 느껴보겠는가.


일주일에 한번 기타레슨을 받으며 매번 긴장하고 가끔 자괴감도 느끼지만(무려 적재가 어디선가 그런 말을 했다. 원래 개인레슨은 굴욕적인거라고.) 이제 어떤 것도 그리 새롭지 않은 나이에, 일상에 설렘과 성취의 희열을 주는 취미를 가졌다는게 그저 좋다. 비록 발전이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늘어나고, 어설픈 실력이지만 공연에도 참여해보는 등의 소소한 재미로 중년의 매너리즘을 열심히 밀어내는 중이다. 그래... 그냥 이거면 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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