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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by 민수)

우린 왜 힘들면 섬으로 가고 싶을까

by radioholic
섬으로 가요 둘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의 시간이 멈출 것 같은 곳으로 가요
별 거 없어도 돼요 준비하지 말구요
아무 걱정 없는 상태가 되면 좋겠어요
(민수, '섬' 中)


제주에 와 있다. 봄에 오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지만, 다소 급하게 결정을 내리고 움직였다. 3일 휴가를 언제 낼지 타이밍을 보는 와중에 참으로 고맙게도 부장이 보고를 받다가 내 심기를 한껏 건드려준 어느 날 아침, 자리에 오자마자 바로 휴가원을 올렸고 중간에 낀 팀장의 걱정과는 달리 부장의 결재가 바로 떨어졌다. 미안했던 걸까, 꺼지라는 거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제 아침 비행기로 제주에 왔다. 정말 운이 좋게도 대학시절 나와 함께 언론사 준비를 했던 선배와 후배가 제주에 산다. 형이 운영하는 펜션에 짐을 풀고 형네 가족과 후배 부부가 함께 모여 회포를 푸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형과 나, 후배의 남편은 엠티에 따라온 눈치없는 복학생처럼 술에 취해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고, 부인들과 아이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웃고 박수 치며 장단을 맞춰줬다. 이런 유치하지만 유쾌한 자리가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는 너무나 크고 소중하다.


힐링의 시간이었다

해가 바뀌고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일과 사생활을 칼같이 분리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부서가 바뀌고 주변 사람이 바뀌면서 그 자부심이 살짝 흔들리던 와중이었다.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속 가사마냥 쫓기는 듯한 생활에 지쳤는지 이렇게 잠깐 제주로 도망을 왔다. 오늘 와이프와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오름도 걷고,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서울에서 쌓였던 피로감이 많이 날아갔다. 이래서 여행이란 게 필요한 것 같다.


제주의 바다는 왜 다른 바다색과 다른 것일까




낮에 짧게 오름을 걷다가 민수의 '섬'이란 노래가 문득 생각났다. 특히 별거 없어도 되고 준비 안 해도 되니 아무 걱정 없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가사가 유난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노래를 부른 민수라는 가수도 생활에 지쳐 섬으로 떠난 경험이 있던 것일까. 그녀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곡의 분위기가 나로 하여금 익숙한 육지가 아닌 섬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왔음을 느끼게 해 줘서 좋았다.


생활의 터전이 있는 육지와 잠시나마 격리될 수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안도감, 행여나 누가 찾더라도 당장 돌아가기는 어려운 거리감이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섬으로 유혹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적 드문 어느 마을 속 민가를 빌려, 늘 보던 TV 대신 음악을 켜놓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이 시간이 너무나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비록 바깥에는 무섭게 바람이 불고 곧 비가 내릴 기세지만, 내일은 여기서 비 내리는 제주의 운치마저 남김없이 즐겨봐야.


https://youtu.be/HqA-6gEMjyg?si=YB6WwiEZ9pIUDI4S

들을 때마다 섬에 가고 싶게 만드는 마성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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