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처연한 풍경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 길 따라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
(말로(Malo), '벚꽃 지다' 中)
벚꽃이 활짝 핀 풍경을 보면 '화양연화'란 말이 이래서 생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벚꽃이 만개하여 꽃의 터널을 이뤄 파란 하늘마저 가려버리는 장면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이토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기가 짧게 저물어버릴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그 장면을 보기 위해선 1년이란 시간을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그때까지 무더위와 장마, 추위라는 그리 반갑지 않은 시련의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한바탕 봄비가 내리고 나면 초록잎에 자리를 내어주고 하나씩 낙하하는 벚꽃잎의 모습이 그토록 처연하고 서글픈 것은. 마지막 춤을 추듯 흩날리며 내리는 꽃비의 향연이 끝이 나고, 길에 흩어져 있는 벚꽃잎의 모습을 보면 한바탕 즐거운 파티가 끝난 다음날 아침의 숙취와 같은 허무함이 찾아든다. 그저께 밤에 저녁을 먹고 와이프와 숲길 산책을 하며 떨어지는 벚꽃 잎을 쫓아가 손에 넣고 서로 깔깔대며 즐거워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또 봄이 지나가는구나.
꽃피는 봄의 정경에 보내는 찬사를 흥겨운 멜로디에 실어 나르는 수많은 봄노래들이 있다. '벚꽃엔딩'이나 '봄봄봄'과 같은 노래들이 이 좋은 봄을 즐기라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창 간질였을 때, 말로(Malo)가 부른 '벚꽃 지다'를 처음 듣고 느꼈던 놀라움이 기억난다. 봄을 보내는 마음, 봄이 지난 후의 쓸쓸함을 이토록 잘 표현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람의 손을 잡고 날리는 꽃잎과 함께 오지 못할 날들이 간다는 가사에,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이였음에도 왠지 모를 서글픔을 느꼈더랬다.
말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정통 재즈 뮤지션이다. 결코 과하지 않음에도 듣다 보면 마음을 저미는 그녀의 음성은, 어떤 노래도 소울 넘치는 재즈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보여준다. '벚꽃 지다' 역시 말로가 부르지 않은 버전은 상상을 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은 '카리나 네뷸라'라는 정말 실력 있는 재즈보컬 그룹으로 활동 중인 그녀의 목소리를 정말 오래도록 듣고 싶다. '농익은'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릴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https://youtu.be/TmUjwnipz2M?si=4U2zjS9xQJ-7_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