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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메는 어디에 있을까

검도에서도, 그리고 삶에서도 익히기 힘든 것

by radioholic

검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수련 중 하나가 바로 메(攻め)라는 개념이다. 세메에 대해서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다소 모호한데, 내가 이해하는 세메는 공격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강력한 기세와 탄탄한 중심 싸움으로 상대방을 압박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상대방의 기세를 누르는 우렁찬 기합이라든지, 죽도로 상대 중심을 날카롭게 겨누고 들어가는 과정 모두가 세메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멈춰있는 듯한 저 순간에도 세메는 계속된다

난 지금까지 검도를 하면서 세메에 굉장히 소홀했던 편이다. 상대와의 물리적 거리만 맞으면 무작정 뛰어들고, 상대보다 내가 빠르고 기술이 좋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대학 동아리에서 비슷한 또래들끼리 수련을 하다 보니, 그저 때리는데만 급급하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습관은 검도 실력이 성장하는데 정말 엄청난 장애물이 되었다.




사실 세메를 모르고 검도를 한다는 것은 뭐랄까...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해놓고 고기 없이 스테이크 소스만 먹는 것만큼이나 허망하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상대 죽도와 내 죽도 간의 미세한 중심싸움, 내 몸의 중심이 상대방의 중심을 빼앗으며 접근해 들어가는 긴장감, 타격을 하려 뛰어들기 직전에 상대의 자세와 중심을 무너뜨리는 쾌감... 이 모든 것이 검도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재미인데 난 그것을 모두 거세해 버리고 그저 득점 부위를 때리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운동량을 늘려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장이 느리고, 그렇게 검도라는 운동에 흥미를 잃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요즘 들어 나와 생각이 비슷한 관원들끼리 정규 운동시간이 끝나고 다시 호구를 쓰며 세메를 익히는 연습을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연습이고 여전히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동안 이런 연습을 하지 않은 채 죽도를 휘두르며 허덕였던 그 시간들이 너무 허망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런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라도 세메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은 안타까움이 너무나 크다.




세메는 검도 용어이긴 하지만, 세메의 과정이 꼭 검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맺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세메의 기술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 죽도를 상대 죽도에 부딪쳐보며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듯, 인간관계에서도 이 사람이 어떤 성향과 마음씨를 지녔는지 파악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누군가와의 갈등이 있다면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는 냉철하게 내가 저 사람과 정말 맞설 수 있는 깜냥이 되는지, 내가 분노를 표한 이후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가늠을 해봐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벌이는 싸움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때문이다. 마치 세메없이 바로 공격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허무하게 반격을 당하는 초보자의 검도처럼.


검도에서 그랬듯, 일상에서의 세메에서도 난 너무나 서툴렀고 지금도 그렇다. 별로 싸움이나 갈등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여러 사람들과 참 많이 부딪쳐왔고, 그런 과정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가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검도를 한다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세메에는 소홀히 한 결과가, 내 사회생활에서도 상당한 손해를 일으킨 셈이다. 이러고도 검도를 배운다고 말하는 건 참 부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일상이 매일같이 싸움이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관계에 있어서 나의 중심과 자존심을 지키며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적 세메는 필요하다. 그런 과정 없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일에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대부분 실패와 패배를 뼈아프게 안겨준다는 것을 이젠 좀 어렴풋이 알겠다. 내가 검도를 하면서 여전히 실력자의 길로 가지 못하는 것도, 조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리 원활하지 않은 것도 결국은 세메의 부족함 때문이다.


송길영 작가가 자신의 책 제목에서 얘기한, '그냥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메시지다. 아무 생각이나 대책이 없이 무언가를 그냥 하지 말고, 어떤 것을 하기 전에 혹은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기 전에 반드시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 대상에 대해 충분히 숙고를 하는 연습을 이제부터라도 해야겠다. 공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내 중심을 지키고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검도에서의 세메는 내 인생에 정말 필요한 덕목이었음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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