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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Apr 02. 2024

책상 위에 주단을 깔고

내 책상에도 봄이 왔다

사무실 책상에는 저마다의 삶의 양식이 담겨있다. 어떤 자리 한켠에는 건강보조제와 커다란 단백질통이 잔뜩 놓여있고, 어떤 이는 아기와 가족사진을 예쁘게 붙여가며 자신 자리를 별장으로 꾸민다. 책상에 오직 PC와 키보드, 간단한 업무자료만 올려놓은 이의 자리를 보면 오직 업무에만 집중하겠다는 결기가 느껴져 경외심마저 든다.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속에 자신의 성격과 생활인으로서의 관심사가 은근히 드러난다.


이렇게 사람들은 회사라는 각박한 공간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며 살아간다. 전쟁터인 회사생활에서 열악하게나마 나름의 요새를 구축하는 셈이다. 물론 그 요새는 부장님이나 팀장님의 호출이나 방문 한 번에 쉽게 무너지는, 약하기 짝이 없는 방어력을 가지긴 했지만. 그 안에서라도 잠깐의 심리적 안정이나마 찾기 위해 우리는 사무실 책상에 자기 취향을 반영하며 꾸미곤 한다.


어제 책상에 데스크 매트를 새로 깔았다. 얼마 전 알라딘 서점에서 우연히 본, 산울림의 노래 가사가 새겨진 밝은 색 매트다. 칼자국이 덕지덕지 나있던 예전의 칙칙한 매트를 걷어내고 새 매트를 깔고 나니 마치 책상 위에 봄볕이 드리워진 느낌이 좋았다. 직장인들이 봄을 맞이하는 방법엔 별게 없다. 이렇게 잠깐이나마 형광등 아래의 건조한 빛을 잠깐이나마 걷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가져다 놓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환기됐으니까,


마음이 아닌 책상 위에 주단을 까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


산울림은 어떻게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라는 가사를 생각해 낸 걸까. 레드카펫도, 꽃길도 아닌 주단이라니. 산울림 세대는 아니지만 산울림 노래를 좋아하는 내겐 그들의 노래 가사 하나하나는 정말 한 편의 시와 같다. '아~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 라는 노랫말은 그야말로 내가 산울림에게 느끼는 감탄의 표현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말일뿐인 글자들이 그들의 노래에선 어떻게 시가 되는 걸까. 책상 위에 그들의 시 한자락을 깔아 두었으니, 당분간은 짜증 나고 힘들 때마다 그 글귀들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다.




책상 위에 주단을 깔았으니, 사뿐히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내야지. 비록 회의 한 번, 상사의 말 한마디에 흩어질 평정심일지라도 나 혼자 앉아있는 그 시간만큼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그런 시간을.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마음에 한 자락 주단을 깔고 편안한 하루를 보내시길.



https://youtu.be/aseVa1H8eUY?si=CcplBN3XTto5Pr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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