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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Mar 31. 2024

가족, 그 따뜻한 단어의 역설

<추락의 해부> 를 보았다

우린 'because of you' 라는 영어를 어떻게 해석할까. 물론 대화 맥락상 다르게 쓰이겠지만, '네 덕분이야' 라는 긍정어로 쓸 것인지, '네 탓이야' 라는 부정어로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파생되는 효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 <추락의 해부>를 보고 나서 계속 맴돌았던 생각이다.


'네 덕분' 인가요, '네 탓' 인가요


이 영화는 어느 한적한 산속에 위치한 집에 살고 있는 세 가족 중 남편의 사망 원인을 찾는 이야기다. 여주인공의 남편이자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의 추락사가 과연 자살인지 부인에 의한 살인인지를 2시간 반에 걸쳐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하지만 수치스러운 민낯들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인물들의 당혹감과 곤혹스러움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영화는 인물 간 심리를 아주 섬세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죽음의 이유를 침착하게 쫓는 법정 스릴러의 외양을 쓰고 있지만, 난 이 영화가 사실 가족이 유지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 가족영화라고 생각했다. 가족 안에서 서로를 탓하지 않고 끌어안는 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드러내는 그런 작품이랄까.


가족, 따뜻한 단어 속 가려진 공간


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당사자 아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게 설령 나의 부모형제나 친한 친구일지라도 나와 배우자, 자식 간에 생기는 일의 맥락과 원인을 모두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 가족에 대한 고민을 친구에게 해본들, 친구 역시 자기 가족을 생각하는 프레임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고 결국 이해는 해도 공감은 안 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폐쇄적인 공동체인 가족 안에서 서로가 '네 탓이야' 를 시전하는 순간, 가족 안의 관계는 지옥이 되고 만다.


아들이 사고로 시력을 잃고, 세 사람이 인적 없는 산에 집을 마련하고, 사회적 커리어와 가족 안에서의 역할에 대해 갈등하게 되고, 그러다 결국 남편이 목숨을 잃는 일련의 과정을 악화시킨 씨앗은 결국 부부가 격렬하게 싸우면서 던지는 '네 탓이야'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둘이 있는 세상에서 상대방에게 모든 잘못의 원인을 돌리면 결국 한쪽은 자기 존재를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까.




힘든 세상 속에서 그나마 휴식과 위안의 공간이 되어야 할 가족과 집이 고통과 갈등으로 채워진 것만큼의 비극은 없다. 온통 남의 편인 바깥세상에서 그나마 내 편이어야 할 사람들을 탓하고 비난하며 적으로 돌리게 된다면, 결국 나도 갈 곳이 없어지니까. 그러니 부디... '네 덕분이야' 란 말은 낯간지러워서 못할지언정 '네 탓이야' 란 말은 삼가주시길. 이런 걸 생각하게 해 줄 정도로 <추락의 해부>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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